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한겨레 기자들이 기록한 ‘나의 광장’

등록 2016-12-21 10:56수정 2016-12-26 08:25

1980년 교실 밖으로 뛰쳐 나갔지만
곧바로 공수부대가 교문을 막아섰다

1987년 6월항쟁의 거리는 회색
청와대로 가자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2008년 명박산성 위에서 맞은 새벽
경찰 방패에 밀려 카메라가 부서졌다

2016년 빼곡한 1호선을 탔다
생후 8개월 아기를 안고 광장에 섰다

여기, 한겨레 기자 200여명의 광장이 있습니다. 1980년 5월의 핏빛 광주에서 2016년 촛불 강을 이룬 광화문 광장까지. 20대 신입 기자부터 50대 편집국장까지. 200여명의 나는 다른 시간, 다른 곳에서 그날 광장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었습니다. 200여명의 광장과 그들의 시간을 이곳에 기록했습니다. 이 글은 200여명의 기억을 모은 공동 집필문입니다.

너는 그날, 광장에 서 있었다.

네 눈 앞에선 북악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세종대로의 촛불 강이 흘렀다. 알을 가득 품은 무거운 몸으로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위풍당당한 북악산 자락 청와대 푸른 기와 아래 너가 서 있었다. 너는 물었다. 권력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광장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너는 걸었다. 혼자 걷다 무심히 스쳐가는 사람들 얼굴을 훔쳐본다. 저마다 짊어져야 하는 무거운 짐을 든 다른 너를 보았다. 성공의 환희보다 실패의 절망이 익숙한 너는, 그 밤의 일렁이던 감정이 어떤 것인지 쉽게 말할 수 없었다. 너처럼, 섬처럼 외로웠을 사람들이 서로의 다리가 되어주려 광장에 나온 것처럼.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오래오래 기쁘게 걸었다.

어, 어? 너는 경복궁역 개찰구를 빠져나와 출구 계단을 오르다가 깜짝 놀란다. 오래간만이에요. 맞은편 인파 속에서 전 직장 후배가 웃는다. 이게 몇 년 만이야? 그래 또 봐. 다시 올라간다. 누군가 어깨를 툭 친다. 학교 친구다. 와, 여기서 만나다니! 정부종합청사를 오른편으로 끼고 지난다. 퇴직하고 여든이 넘은 회사 선배를 만난다. 너를 면접했던 사장이다.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자유발언대에 올랐다. 우리 언니 오빠들이 생사를 오가던 2014년 4월 16일, 7시간 동안 대통령은 무엇을 하셨나요. 방금 만난 여든 넘은 선배의 증손녀뻘이다.

광장에선 장수만세, 어린이만세, 세대초월 만세다. 주최 쪽이 집회 주의사항을 알려준다. 청소년에게 ‘기특하다’ ‘대견하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광장에서 배운다. 청소년, 여성, 장애인, 동물을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2016년의 광장은 학교였다. 훗날 좌절과 실패의 역사로 교과서에 남을까 두려울뿐.

너는 그 시간, 광장에 서 있었다.

2011년 여름, 너는 반값 등록금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갔다. 명동 롯데백화점 앞을 뛰었다. 힘껏 뛰던 너는 곁에 있던 한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이게 공적 주체가 된 기분인가 봐!” 그 말을 하곤 잊어버렸다. 너가 한 그 말을, 곁에 있던 언니가 나중에야 말해주었다. 너는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직접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서울의 한가운데, 가장 큰 도로에서 배웠다. 촛불을 들고 집회에 가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거리에서 너는 반값 등록금 공약을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물대포를 쏘았다. 4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 겨울, 그냥 맞아도 차가웠을 물대포에 푸르스름한 최루액이 섞여 있었다. 물대포를 맞은 백남기 농민이 스러졌다. 광장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공간이었다.

너는 그날, 광장에 서 있었다.

2008년 6월1일, 너는 서울 경복궁 앞 동십자각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은 경찰차벽 위에서 새벽을 맞았다. 전날 밤부터 ‘촛불 시민들’은 경찰과 대치했고 힘과 힘이 부딪치는 지점에서 카메라를 들고 위태롭게 서 있었다. 그날 오후 너는 경찰 방패에 떠밀려 안경이 깨지고 카메라가 부서졌다.

촛불은 너에게, 우리 모두에게 낯선 것이었다. 광장은 축제처럼 즐거웠지만 마지막에는 늘 두려운 순간으로 찾아왔다. 경찰이 해산을 명령하고, 전경들은 방패와 곤봉을 들고 살기어린 표정으로 군중에게 달려들었다. 희번덕거리는 두 눈 뒤로 앳된 얼굴이 비쳤다. 두려움이 그들에게 살기를 부여한 것 같았다. 시위 참가자들은 달리며, 맞았다. 소리 지르며 두려워했다. 너는 그해 여름 어느 밤, 세종로 입구의 거대한 ‘명박산성’에 막힌 시민들이 온몸으로 경찰버스를 밀쳐내려 충돌하던 현장에 있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울부짖었다. “싸우지 마세요. 우리는 ‘광주 5·18’ 때처럼 피 흘리고 싶지 않아요.”

2008년 여름의 촛불을 보수언론은 폭도로 규정했다. 경찰의 진압 역시 광폭했다. 너는 경찰 방패에 찍혀 나자빠지기도, 물대포를 뒤집어쓰기도 했다. 그리고 여럿에게 생채기를 남긴 채 꺼져가는 촛불을, 너는 보았다.

너는 그때, 광장에 서 있었다.

너는 1980년 5월17일 조선대 바로 옆에 있는 고등학교로 머리에 피를 흘리며 광장에서 쫓겨오는 대학생들을 보았다. 학교는 다급한 하교령이 내렸다. 수업이 중단됐다. 시내버스가 끊겨 1시간 넘게 걸어 집에 갔다. 동네 어른들은 여학생들이 다니면 위험하다며, 번갈아가며 골목 입구에서 경계를 섰다.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한 너는 들었다. 광장에서 들려오던 함성과, 불어오던 불길과, 고개 넘어 총소리를.

그해 5월19일, 광주일고 앞에 너가 있었다. 닫힌 교문 앞에서 공수부대를 향해 구호를 외치며 고등학생들이 짱돌을 던졌다. 너는 수업을 거부하고 교실 밖으로 뛰쳐 나갔다. 헬리콥터가 떴다. 곧바로 공수부대가 교문 앞을 막아섰다. 너의 저항은 그렇게, 끝이 났다.

너는 광주 금남로 도청 앞 분수대에 나갔다. 교수들이 앞장서고 학생들이 뒤따랐다. 어두워진 거리에 횃불을 들고 ‘전두환은 물러가라’ 소리쳤다. 그때의 너는, 지금의 너에게, 아스라한 꿈 속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전두환 군사 독재정권의 유혈진압으로 광주가 피로 물 든 그해 너는 경의선 열차를 무임승차해 친구들과 서울역 광장으로 갔다. 수십만의 시민 학생 속에서 너는 지랄탄의 매케한 냄새와 ‘백골단’에 쫓기며 독재타도를 외쳤다.

1980년 5월의 거리는 안개와 불안이었다. 5월 광주의 광장은 핏빛 고통이었다. 군부의 총칼에 스러진 이들을 생각할 때면 살아있는 것조차 부끄러움이요, 고통이었다. 너는 광장에 설 수조차 없었다. 광장은 총칼로 짓밟혔다.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에 사망한 1979년 10·26 사태 이후 민주화의 싹은 피어났다. 긴급조치로 해직된 교수와 학생들이 캠퍼스로 돌아오면서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사회 전체로 퍼저 나갔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임하고 신군부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거리로 젊은 청춘들이 몰려 나왔다. 전투 경찰과 백골단은 최루탄과 몽둥이로 제압했고, 시위대는 돌과 화염병으로 맞섰다. 결국, 너는 패했다. 너가 던진 돌과 외침은 허공에 사라졌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너는 그때, 광장에 서 있었다.

1987년 6·10 항쟁의 거리는 회색이었다. 최루가스 분말로 허옇게 물들었다. 사람들 낯빛은 잿빛이었다. 너는 그해 6월10일 서울역에서 서울광장 사이 골목길에서 청자켓에 청바지를 입은 사복경찰관 백골단과 숨바꼭질을 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 그해 1월 서울대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숨지고 6월9일 연세대 교내 시위에 나선 이한열이 직격 최루탄에 맞아 의식불명에 빠졌다.

너는 광주의 초여름, 고층 아파트 복도에서 멀리 큰길을 내다보았다. 망월동으로 이어진 길이었다.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앞장섰고, 그 뒤를 수많은 사람이 따랐다. 복도에 모여든 이웃들 가운데 누군가 눈물을 훔쳤다. 가족 중 누군가 행렬을 보겠다고 나섰고, 어린 너는 그 손을 잡고 따라갔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흐느끼는지 그땐, 몰랐다. 그날, 너가 따라간 행렬 가장 앞 영정 속 사람의 정체를. 연세대 이한열이었다.

1987년 7월 9일, 너는 서울시청 분수대 근처에서 고개를 처박고 병 걸린 닭처럼 졸고 있었다. 전날 연세대에서 밤을 지새고 이한열 장례식 행렬을 따라 아현동을 거쳐 노제가 예정된 서울시청 앞에 도착했다. 24시간 넘게 한숨도 못자고 밥을 굶었다. 졸던 너의 뒤로 여름 한낮 열기와, 군부독재에 대한 분노가 뒤엉켜 서울시청 앞은 용광로처럼 들끓었다. “청와대로 가자” 누군가 외쳤다. 너는 잠이 깼다. 겁이 덜컥 났다. 진격 투쟁이 대세가 됐다. 흉포한 군부 독재자 전두환이 청와대 앞으로 몰려온 사람들을 그냥 두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새 사람들 속에서 너는 광화문 광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경찰 진압 병력이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포진했다. 경찰은 주저하지 않았다. 다중진압용 최루탄인 지랄탄을 발사했다.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의 장례식이니, 오늘만은 최루탄을 쏘지 않을 것이란 기대는 순진한 것이었다. 청와대 진격투쟁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한순간에 흩어졌다.

너는 6월의 어느날, 동대문구 제기동 경동시장 사거리를 헤맸다. 그날은 유난히 경비가 심했고, 시위는 격렬했다. 경찰차가 화염병에 맞아 전소됐다. 시위 끝무렵 경동시장으로 쫓겼다. 친구들이 경찰에 붙잡혀갔다. 너는 엉겁결에 한 양판점으로 몸을 피했다. 양판점 주인은 너를 숨겨주고 수색에 나선 경찰들에게 아무도 없다고 둘러댔다. 그렇게 너는 잡혀가지 않았다. 미친 세월이었다.

너는 그해 6월 저녁이면 퇴근을 하고 광화문 근처 시위 행렬에 끼어들었다. 10여명이 모이면 백골단이 덮쳤고 최루탄을 던졌다. 옷을 털기는 했지만 맵싸한 냄새가 배었다. 사람들은 재채기를 했다. 학생 중심의 거리시위는 6월18일, 6월26일을 거치며 대규모 시민저항으로 번졌다. 1987년 6월의 거리는 분노와 저항이었다. 너는 무엇에 저항해야 하는지를 알았고, 분노를 가슴에 달고서 거리를 내달렸다. 구호는 짧았다. 절박했다. ‘호헌철폐’ ‘직선쟁취’ ‘독재타도’. 뜀박질을 해야 했기에 구호는 스타카토처럼 짧을 수밖에 없었다.

6월29일 노태우가 ‘직선제 수용’을 밝혔다. 시민들은 거리에서 환호했다. 전두환이라는 이름이 지워지자, 질주는 멈췄다. 그리고, ’노태우’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1987년 6월 항쟁이 가져온 결과물은 정치인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다시는 그만한 수의 군중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을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만한 수가 다시 광장에 모이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민주주의의 파탄이 아니고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요, 그때만큼 지금 내 가슴은 뜨겁지 않아요. 오랜 세월, 당신을 사랑하기에는 내가 얼마나 허술한 사내인가를 뼈저리게 알았고, 당신의 사랑에 값할 만큼 미더운 사내가 되고 싶어 몸부림했지요. 그리하여 어느덧 당신은 내게 ‘사랑하는' 분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젠 아시겠지요. 왜 내가 자꾸만 당신을 떠나려 하는지를. 사랑의 의무는 사랑의 소실에 다름 아니며, 사랑의 습관은 사랑의 모독일 테지요. 오, 아름다운 당신, 나날이 나는 잔인한 사랑의 습관 속에서 당신의 푸른 깃털을 도려내고 있었어요. 다시 한번 당신이 한껏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고 싶습니다. 내가 당신을 떠남으로써만… 당신을 사랑합니다.”

1990년대 초반 실연을 겪거나 혁명에 상처 입은 너의 가슴을, 이성복의 시집 <남해금산> 뒤표지 글이 마구 후벼팠다. ‘당신’이라는 낱말을 ‘혁명’이라는 낱말로 바꾸면. 그랬다. 의무가 되어버린 사랑과 혁명은 빛이 바랬다. 100만의 광장을 꿈꾸었지만, 너에게, 우리에게 광장은 없었다. 낡은 술집에서 소줏잔을 기울이며, 젊은이가 할 수 있는 건 사랑과 혁명 밖에 없다며 목청을 돋우다가, 퀴퀴한 자취방으로 숨어들곤 했다.

너는 1996년 광장에서 영웅을 보았다. 지금은 7호선 지하철역이 들어선 세종대 사거리에서 청바지를 입은 백골단을 처음 만났다. 너는 '김영삼 대선자금 공개'를 외쳤다. 여학생들을 위해 백골단의 몽둥이를 막아서다 팔뼈가 부러진 한 남자 동기가 그날 집회의 영웅이 됐다. 그러나 영웅놀이를 하기에 광장은 폭력과 선혈이 낭자한 곳이었다. 3월 말 거리 시위에서 연세대 2학년생 노수석이 죽었다. 20대가 'X세대'라 불리는 시대였지만, 광장은 어쩔 수 없이 두려운 곳이었다.

너는 그렇게 광장에 서 있었다.

누군가 역사는 ‘빌어먹을 일의 연속’이라고 했다. 2016년, 이 나라 비루한 권력의 역사가 딱 그랬다. 다른 누군가는 역사는 위대하다고 했다. 이 나라의 ‘촛불’이 그랬다. 너는 2016년 겨울, 서울의 1호선 지하철을 탔다. 사람들을 가득 실은 지하철은 정거장을 지날수록 무거워졌다. 사람들은 꾸역꾸역 지하철에 계속 올랐다.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무거운 몸짓으로 검은 터널을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한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말했다. “조금 참아. 다 왔어.” 네 앞엔 고등학생 두 명이 문 쪽에 달라붙은 채 책가방을 안고서 조용히 서 있었다. 한 여성이 처음 보는 학생에게 대뜸 어디서 왔니, 물었다. 대구에서 왔다 한다. 사람들을 가득 먹은 1호선은 광장으로 달렸다.

종각역 정차. 다른 동네, 다른 일터, 다른 집에서 지하철에 오른 사람들이 종각역에 내렸다. 순간 지하철이 텅 비었다. 아빠와 아이가 내리고 아저씨들이 내리고 아주머니들이 내리고 청춘남녀들이 내리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내리고 대구 학생들이 내리고 너도 내리고. 역사 바깥 지상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촛불의 일렁임이 눈에 들어오고 촛불의 외침이 귀에 꽉 들어찼다.

2016년 광장의 구호는 시이고 골계이고 노래다. 자유와 쾌활함이 넘쳤다. 사랑의 의무와 습관을 던져버리고 너는 다시 광장에 섰다. 30여년 전, 그때도 그랬다. 권력의 폭압으로 많은 이들이 희생됐지만, 시민의 직접 행동은 끝내 질긴 독재의 사슬을 끊어냈었다. 눈물 콧물로 달음박질쳤던 거리, 용솟음치던 분노의 함성, 뜨거운 연대와 가슴 벅찬 환호. 뒤이어 온 “빌어먹을 일들”은 민주주의를 불구로 만들었지만. 시민의 힘으로 연 미래의 창은 탐욕스런 권력 동맹으로 얼룩져 세상은 더 극심한 각자도생의 무한경쟁 터가 됐지만. 부패와 특권이 활개 치고, 불평등과 불공정이 상승의 사다리마저 부숴버렸지만. 너는 외쳤다. “이게 나라냐.” 다섯 글자는 빌어먹을 역사를, 역사를 만난 그들을 향한 외침이었다.

너는 그때 광화문 광장에서 생후 8개월 된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아기는 광화문 광장에 모인 인파 가운데 가장 작고 연약했다. ‘놀라지 않을까?’ 아기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울지도 보채지도 않고 너의 품에 가만히 안겨 그 ‘낯선 세상’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차가운 겨울 바람 속에서 사람들이 “박근혜 하야”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외칠 때, 아기는 어쩌다 한번씩 무언가를 옹알거렸다. 미숙한 아빠인 너는 끝내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너는 2016년 11월12일 광장에서, 가슴에 품은 아기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오래도록 생각했다. 그리고 그 세상에선 두번 다시 지금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광장에 선 너는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했다. 대체로 무표정하거나 시무룩했는데 이상한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갈수록 사람이 불어났다. 자주 못 만났던 고등학교 친구들이 연락해왔다. 시청 뒤편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안주로 소주잔을 기울였다. 친구가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슬퍼 보여. 슬픈 백성이야.”

너는 행렬을 따라 종로를 행진했다. 1985년 종로에서 시위를 하다 엉겁결에 맨 앞줄에서 플래카드를 들던 생각이 떠올랐다. 심장이 쿵덕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리고 두려움에 몸서리쳤던 생생한 기억. 아, 이렇게 느긋하고 편한 마음으로 종로 한 가운데를 행진할 수 있다니…

너는 그날 광장을 걸었다.

일본인 뮤지션 친구 하찌와 함께였다. 하찌는 “구경해보고 싶었다”며 친구들을 따라 나섰다. 하찌는 시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대단하네요”를 연발했다. 끝없이 이어지던 행진이 멈추고 자유발언 시간이 되자 하찌는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트럭에 오르기 전 하찌는 ‘탄핵’이라는 글자를 손목에 적어넣었다. 어려운 단어라 잊어버릴까봐서였다. 다른 발언자가 “욕 좀 해도 되겠습니까?” 하니 “안 돼”라고 듣던 사람들은 대답했다. 그래도 몇 마디 ‘욕’이 튀어나가자 “하지 마”가 울려퍼졌다.

너는 지금 광장에 있다.

촛불처럼 점멸하는 컴퓨터 화면 속 커서를 너는 바라본다. 광장에 들른 뒤 거의 매주 토요일마다 회사에 나와 디지털 기사로 내보낼 메모와 기사를 고치고 합치면서, 너는 첫 문장을 쓰는 두 손 앞에서 긴 시간을 보낸다. 하나로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수백만의 촛불을 과연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광장의 저 다양한 목소리들은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떻게 현실화될까, 아니 될 수는 있을까.

소설가 이문열은 <조선일보> 기고에서 촛불을 ’아리랑 축전’으로 표현했다. “촛불시위의 정연한 질서와 일사불란한 통제 상태에서 ‘아리랑 축전’에서와 같은 거대한 집단 체조의 분위기까지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저 문장에 분노했지만, 너의 눈에 들어온 건 한 마디였다. “그러나 어찌하랴.” 시대를 읽지 못하고 퇴행하는 늙은 지식인의 회한에 찬 모습이었다. 이 한 문장은 그들의 두려움을 명확하게 상징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하기 전날인 12월 8일 오후 2시,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건설 현장 10층에서 마흔네살 협력업체 노동자 강아무개씨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전모·안전벨트를 착용했지만 현장에는 추락방지를 위한 안전 그물망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사고 현장에서 100m 남짓 떨어진 또 다른 삼성전자 반도체 공사현장에서 질식사고를 당한 마흔여섯살 조아무개씨가 투병 8일 만에 숨진 지 이틀이 지난 때였다. 모든 국민의 관심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집중돼 있는 동안 어딘가의 일터에선 사람이 죽어갔다. 너는 탄핵이 의결된 날, 반도체공장 건설현장에서 일어난 산업재해 사망 사고 기사를 쓰고 있었다. 또 누군가는 희망퇴직을 강요 받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해고 당하고 있었다.

권력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광장의 힘은 무엇인가. 너는 광장에서, 걸으며 물었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던 1987년 광장에 선 사람들이 흩어지고 29년이 지났다. 그 사이 광장은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또 다른 너에게 다가갔다. 권력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변함이 없는데, 믿기 어려운 ‘평화’와 ‘비폭력’이 광장을 훨훨 날았다. 화염병이 아닌 갸날픈 촛불이 너의 손에 들렸다. 바람이 불면 꺼지지 않고 오히려 활활 타오르는 신비로운 촛불. 광장의 인파는 거대한 광장을 가로지르며 권력이라는 저 과녁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타오르는 화살 불이었다. 화살은, 타오르던 불의 흔적은 오래 남을 것이다. 불을 든 너는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또 다른 시대를 살아갈 너에게 불이 옮겨 붙을 것이다. 정복될 수도, 길들여질 수도 없는 영원한 불. 그 불은 휘발되다 타오르고 사그라들다 타오를 것이다.

권력이 광장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너는 느린 두 다리로 걸으며, 제기동 경동시장에서 경찰에 쫓기며, 지랄탄에 허망하게 흩어지는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서 검은 터널을 뚫고 광장으로 향하는 묵직한 지하철 1호선에서, 광장에서 품에 안긴 채 옹알이하는 생후 여덟달 아기에게서 보았다. 작고 여리고 힘 없고 허망해 보이는 아름다운 존재들에서. 권력이 광장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너는 보았다.

광장에 선 너는 나다, 너는 국민이다. 광장은 헌법이다.

[클릭] 한겨레 기자들의 ‘나의 광장’

한겨레 기자들 democracy@hani.co.kr, 그림 박재동 화백, 정리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그럴거면 의대 갔어야…건방진 것들” 막나가는 의협 부회장 1.

“그럴거면 의대 갔어야…건방진 것들” 막나가는 의협 부회장

이재명 ‘선거법 위반’ 결심 공판에 아이유·이문세·허경영 언급 왜? 2.

이재명 ‘선거법 위반’ 결심 공판에 아이유·이문세·허경영 언급 왜?

폭염 요란하게 씻어간다…태풍 풀라산 주말 강풍, 폭우 3.

폭염 요란하게 씻어간다…태풍 풀라산 주말 강풍, 폭우

“윤 정권, 남은 임기 죽음처럼 길어”…원로 시국선언 4.

“윤 정권, 남은 임기 죽음처럼 길어”…원로 시국선언

엄마 지킬 다섯 쌍둥이…‘팡팡레이저’ 무사 출생 완료! 5.

엄마 지킬 다섯 쌍둥이…‘팡팡레이저’ 무사 출생 완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