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익 (1938~1983)
1983년 10월9일, ‘아웅산 사태’로 남한 각료들이 목숨을 잃다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불의한 권력과 손잡을 수 있을까, 당신의 선택은? 지식인의 오랜 딜레마다. 전두환의 ‘러브콜’을 받았을 때 김재익도 같은 고민. 주위에서 “김일성 밑에서도 일할 테냐” 묻자 김재익은 대꾸했단다. “김일성을 설득할 수 있다면 해야지.”
경제 정책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입각. 인플레이션 잡기에 주력했다. 공정거래법을 주도했다. 재벌 대신 중소기업을 육성할 계획을 짰다. “왜 독재정권에 협력하느냐”는 가족의 항의에 “시장 경제가 자리 잡으면 정치 민주화도 따라온다”고 답했다나.
금융실명제도 추진했다. 정권 실세로 불리던 허화평이 격하게 반발. 김재익도 지지 않았다. 사표를 내고 덜컥 입원. 전두환은 이때 김재익의 편을 들었다(손광식 기자의 회고). 얼마 후 허화평은 실각. 그렇다고 전두환이 금융실명제를 실시한 것도 아니었다. 정경유착을 그만둘 생각도 없었다. 김재익은 끝까지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었을까? 알 수 없다. 김재익이 북한의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은 때가 1983년 10월9일. 3년은 짧은 시간이었다.
금슬 좋기로 유명한 부부였다. 2010년에 부인은 남편 김재익의 이름으로 전 재산을 장학금 기탁. 애틋한 미담이 남았다. 김태권 만화가
김태권 만들고 이은경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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