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명동대로 전력거래소 긴급전력수급대책상황실에서 직원들이 전국에서 수집된 전력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에너지 정책에서 수요전망이라는 첫 단추를 끼웠다면 다음 단계에서는 ‘적정 설비예비율’을 결정해야 한다. 적정 설비예비율은 최대 전력수요가 발생하는 시점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예비전력의 비율이다. 8차 계획 워킹그룹은 2031년 기준 적정 설비예비율을 22%로 산정했다고 지난달 13일 밝혔다. 그런데 이 수치는 핵발전소 확대의 ‘근거’가 된 7차 계획 때와 같다. 신고리 5·6호기를 비롯해 핵발전소를 새로 짓지 않고 노후 핵발전소를 멈추더라도 설비예비율이 달라질 필요는 없다고 워킹그룹은 판단하고 있다.
이유는 핵발전 비중이 줄면 적정 설비예비율의 한 축인 최소 설비예비율(안정적 공급을 위해 확보해야 하는 최소한의 예비전력 비율)이 작아져도 되기 때문이다. 최소 예비율은 발전소의 예방정지와 고장정지 일수가 길수록 커진다. 예방정비와 고장정지로 1년에 가동정지되는 날이 가스·석탄(44일)보다 더 많은 핵발전소(76일)의 비중이 줄면 최소 예비율은 낮아져도 된다.
정부가 확대하려는 신재생에너지는 햇빛이나 바람 정도에 따라 발전능력이 다르므로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워킹그룹은 이 문제를 해소할 가변양수발전 등의 백업(대비) 설비예비율 2%를 최소 예비율에 포함해 뒀다. 정부는 현재 7% 수준인 신재생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키울 방침이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유럽은 설비예비율이 100%를 넘는다”며 정부가 무리하게 예비율을 낮춘다는 비판도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보면 2014년 기준 신재생 비중이 41%인 독일은 예비율이 130.7%이고, 28.2%인 스페인은 175.4%, 25.9%인 이탈리아는 136.2%다. 그러나 유럽과 한국의 사정은 완전히 다르다. 유럽은 기존 핵·석탄·가스 설비가 그대로 유지된 채 민간이 공급하는 신재생 설비가 증가했다. 전력시장이 자유화된 탓에 설비예비율을 정부가 규제할 수 없어서다. 예비율 산정 방식도 다르다. 유럽은 정격용량을, 한국은 실효용량(피크타임 전력생산 기여도)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산업부에 따르면 유럽식으로 계산하면 한국의 설비예비율은 2030년 66%까지 올라간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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