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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나는 역사다] 광주학생운동 ‘백지동맹’ 앞장선 피해 여학생

등록 2017-11-02 18:33수정 2017-11-02 20:38

이광춘(1914~2010)
1929년 11월3일, 광주학생운동이 시작되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1920년대 말 광주지역 학생들은 사회 모순에 관심이 많았다. 독서회니 성진회니 학생조직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한편 전남 나주에 사는 한국인 학생들은 열차를 타고 광주에 통학했는데, 일본인 지주 자녀들과 감정이 좋지 않았다. 1929년 10월30일, 나주역에서 일본인 남학생이 한국인 여학생을 괴롭혔다. 일부러 부딪쳤다고도 하고 머리채를 잡아당겼다고도 한다. 한국인 남학생과 싸움이 붙었는데 일본인 어른들은 일본인 학생 편만 들었다.
일러스트 오금택
일러스트 오금택

광주의 한국인 학생들이 1차 시위를 벌인 날이 11월3일. 일본인 학생이 시위대를 테러하며 패싸움을 유도했으나, 학생운동 지도부는 “우리의 적은 (일본인 학생이 아니라) 제국주의”임을 거듭 확인하고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는 거리시위로 운동 방향을 잡았다. 11월12일의 2차 시위는 더욱 규모가 컸다. 12월과 이듬해 1월에는 수만명이 참여하는 전국적인 학생운동이 되었다.

이광춘(사진 왼쪽)과 박금옥은 나주역에서 괴롭힘을 당한 당사자였다. 1930년 1월13일은 학교에서 시험을 보던 날. 이광춘은 “구속학생 석방”을 요구하며 답안지에 한 글자도 쓰지 말자는 백지동맹을 이끌었다. 퇴학당하고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2010년에 세상을 떠났다.

김태권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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