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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5시간 통학에 너덜너덜…“기숙사 아니었음 죽었을 거예요”

등록 2017-12-04 05:00수정 2017-12-06 11:00

[대학 기숙사를 부탁해] ① 기숙사 확충 경희대생 만나보니
‘행복기숙사’ 입주 뒤 학생 삶 달라져
“바퀴벌레에 얹혀살던 반지하 안녕”
인천서 통학하던 ‘통학러’ 이지수씨
“5시간 통학에 버스·지하철 환승만 5번”
주거비·안전 걱정 놓고 공부에 집중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정희권 학생이 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학교 행복기숙사 아름원 숙소에서 책을 읽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정희권 학생이 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경희대학교 행복기숙사 아름원 숙소에서 책을 읽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청년층은 1인가구가 많고, 월세 비중이 64.3%로 높다.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도 평균을 상회한다. 주거비 부담이 높고 취업시기가 늦어지면서 청년층의 자산형성도 어려운 실정이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문재인 정부 ‘주거복지 로드맵’이 진단하고 있는 청년의 주거 현실이다. ‘대학생·사회초년생’을 구분해 지원 방안을 제시한 로드맵에는 2022년까지 학내·외 기숙사 입주인원을 5만명 늘리겠다고 밝히고 있다.

대학 기숙사는 가장 기본적인 대학생 주거복지의 대안으로 꼽히지만, 정작 대학과 지역사회에서는 갈등의 축인 것이 현실이다. 학생들에게 ‘인서울’을 요구하는 사회, 기숙사 없이 지어진 대학교, 그 덕에 몸집을 불린 임대시장. 기숙사를 둘러싼 모순의 현장에 정작 청년들의 목소리는 없다. <한겨레>는 기숙사로 인해 바뀐 학생들의 삶과 목소리를 집중 조명하고, 임대업자들의 고민과 대학가의 변화를 추적해 3차례에 걸쳐 싣는다.

2012년 2월, 경희대 정경대학에 입학한 유현주(가명·25)씨는 학교 주변 원룸 시세를 뒤져보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경남 창원 출신인 유씨는 기숙사 입주 시기를 놓쳐 급하게 방을 구해야 했는데, ‘살 만한 곳’은 대부분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에 고민하던 유씨는 결국 2평짜리 고시원에 들어갔다. 침대에서 발을 뻗으면 발이 책상 밑으로 들어갈 정도로 비좁은 곳이었다.

‘너무 답답해서’ 3개월 만에 고시원을 나온 유씨는 이후 ‘햇볕이 들지 않았던’ 원룸과 ‘주인 아주머니가 불쑥 방문을 열던’ 하숙집을 전전했다. 둘 다 4평 남짓한 방이었지만 월세는 45만~50만원이나 됐다. 다달이 부모님께 월세를 받았지만 용돈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레스토랑에서 서빙 알바를 했다. 휴학 뒤 올해 2학기에 복학한 유씨는 경희대 신축 기숙사인 ‘행복기숙사’에 입주해, 본격적으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기숙사비가 원룸 월세에 비해 거의 절반이거든요. 저렴하고, 안전하고, 무엇보다도 햇볕이 잘 들어서 좋아요.”

경희대 행복기숙사는 463실, 926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지난 8월 완공됐다. 2학기부터 900여명이 행복기숙사에 입주하면서 경희대의 기숙사 수용률은 2016년 18.9%에서 2017년 22.1%로 훌쩍 뛰었다. 2017년 수도권 대학의 평균 기숙사 수용률이 16.1%인 것과 견줘 6%포인트나 높다. 2인실 기숙사비도 월 19만9000원으로, 지난해 전체 사립대 기숙사 한 달 평균 기숙사비(20만8000원/2인실 기준)보다 저렴하다. 먼 거리를 통학하고 고시원과 원룸을 전전했던 학생들은 행복기숙사에 입주한 뒤 “삶이 바뀌었다”고 입을 모았다.

바퀴벌레와 동거하던 반지하 지역 출신 학생들에게 기숙사는 ‘가뭄 끝의 단비’ 같은 존재다. 광주 출신으로 2015년 경희대에 입학한 신재은(가명·21)씨가 처음 지냈던 반지하 원룸에는 바퀴벌레가 들끓었다. “한국외대 후문에 있는 4.5평짜리 원룸에 살았는데, 보증금 800만원에 월세 50만원이었어요. 반지하라 그런지 바퀴벌레가 너무 많아서, 집에 바퀴벌레가 나오는 게 아니라 제가 바퀴벌레 집에 얹혀사는 느낌이었어요.” 원룸엔 해가 잘 들지 않아 곰팡이도 ‘울창하게’ 피었다. 신축 기숙사에 입주한 신씨는 “바퀴벌레한테서 탈출한 것만도 좋다”고 했다.

신씨가 살았던 ‘반지하 원룸’은 주거빈곤에 속하는 환경이다. 통계청이 파악한 청년가구의 주거실태 분석을 보면, 전국의 청년가구 주거빈곤율이 17.6%인 데 견줘 서울 청년가구의 주거빈곤율은 29.6%로 12%포인트나 높았다. 지하나 옥탑 등 ‘주택 이외의 기타 거처’에 사는 청년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는 의미다.

광주 출신의 정희권(23)씨는 2014년 기숙사 추첨에서 떨어진 뒤 경희대 후문의 원룸에서 살다 올해 신축 기숙사에 입주했다. 전에 살았던 4평짜리 원룸은 보증금 3000만원, 월세 35만원이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에게 보증금 3000만원이 있을 리 없잖아요. 막상 방을 구하려다 보니 부모님께 죄송하더라고요.” 지역 출신 학생들이 대학 진학 뒤 겪게 되는 ‘주거비 부담’은 고스란히 부모의 몫이다. 지난달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청년·대학생 금융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대학생 850명 가운데 생활비와 주거비에 쫓겨 부모의 도움을 받는 학생은 75.5%에 이르렀다.

부모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이들이 주거비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신씨는 “부모님이 등록금·주거비·용돈을 대주셔서 말 그대로 ‘등골브레이커’가 됐다”며 “가끔 알바도 했고 성적 올려서 기숙사에 꼭 들어가야 한다는 부담도 느꼈다”고 했다. 정씨는 “1학년 2학기 때 아버지가 은퇴하셨는데, 수입이 ‘0’이 되니까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까지 군대를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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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학러’들은 ‘길바닥’에 시간 버려 신축 기숙사는 경기·인천 등에서 학교를 오가는 ‘통학러’들의 삶도 바꿨다. 경희대 관광학과에 재학중인 이지수(가명·21)씨는 입학 후 3학기 동안 “통학 때문에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집이 인천 서구거든요. 집에서 나와 마을버스 타고 인천 2호선을 탔다가, 검암역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탄 뒤 공덕역에서 다시 경의중앙선으로 갈아타고요. 회기역에서 마을버스 타서 학교 정문 앞까지 와요. 총 2시간 반이 걸리는 거죠.” 녹초가 되어 학교에 도착했다가, 너덜너덜해져 집으로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했다는 이씨는 “‘기숙사 입주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에 입주 신청 날짜를 석달 전부터 손으로 꼽았다”고 말했다.

통학의 고통은 비단 이씨만 겪는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한국장학재단이 공개한 ‘대학생 주거 실태조사’를 보면, 가족으로부터 독립한 대학생 1만4764명 가운데 독립의 주된 이유로 ‘통학 거리를 줄이기 위해서’를 꼽은 비율이 80.9%로 가장 높았다. 지난해 9월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직장인과 대학생 87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생의 평균 통학 시간은 왕복 122분으로 나타났다. 하루의 10% 가까이를 ‘길바닥’에 버리는 셈이다.

2학기 신축 기숙사에 입주한 김태경(가명·23)씨도 경기 김포시에 있는 집에서 학교까지 하루 왕복 4시간을 허비하던 통학러였다. 김씨는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몰리는 러시아워에는 사람들 틈에 끼는 게 너무 힘들었다”면서도 “학교 근처 원룸들은 보증금이 비싸 자취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경희대 행복기숙사 내부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경희대 행복기숙사 내부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기숙사는 학생들의 ‘숨통’ 경희대에 신축 기숙사가 지어지기까지는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2014년 경희대가 교내 기숙사 신축 계획을 발표하자 인근 원룸 주인 등 임대업자들이 동대문구청에 민원을 넣으며 강하게 반대했고, 동대문구청이 민원조정협의체를 구성해 주민 공청회를 수차례 열면서 합의를 끌어냈다. 기숙사 건축이 완료된 지난 8월에는 동대문구청이 신축 기숙사에 대해 ‘교통환경영향평가’를 다시 신청하라고 통보하며 사실상 사용 승인을 보류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기숙사 입주를 약 2주 앞두고 간신히 임시사용 신청이 승인되면서 예정대로 기숙사 입주가 진행됐다.

기숙사를 둘러싸고 학교와 구청, 지역 주민들 사이에 벌어졌던 갈등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한 이들은 바로 기숙사 입주를 앞두고 있던 학생들이었다. 금혜영 경희대 부총학생회장은 “대학가 주변 방값이 높은 상황에서 등록금, 생활비까지 더하면 말 그대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많다”며 “기숙사는 안전하며 저렴한,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시설”이라고 했다.

대학생 주거 실태조사를 보면, 비기숙사 거주 독립 대학생 가운데 주거비가 ‘매우 부담됨’과 ‘약간 부담됨’이라고 응답한 비율을 합하면 82.0%인 반면, 기숙사 거주 대학생은 ‘매우 부담됨’과 ‘약간 부담됨’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59.6%로 나타났다. 기숙사라는 선택지만 생겨도 대학생이 느끼는 주거 부담은 확실히 낮아진다는 의미다.

행복기숙사에 입주한 경희대 학생들은 “숨통이 트였다”고 입을 모았다. “집 걱정을 안 해도 되니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려고요.”(유현주) “기숙사 ‘합격’했다고 하니까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셨어요. 꾸준히 성적 잘 받아서 졸업 때까지 있으려고요.”(정희권) “기숙사 들어오고 나서는 하루가 길어졌어요. 놀거나 과제할 시간이 충분히 있으니까 여유가 생겼어요.”(김태경) “5시간 통학할 때는 ‘기숙사 입주가 아니면 난 죽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제는 뭐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이지수)

황금비 신민정 최민영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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