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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임대업자 반발에 막힌 학생주거…‘상생의 기숙사’ 힘든가요?

등록 2017-12-06 05:02수정 2017-12-06 11:00

[대학 기숙사를 부탁해] ② 임대업자들의 한숨
한양대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들이 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숙사 신축을 촉구하고 있다. 한양대 총학생회는 기숙사 신축 여부가 결정되는 6일 21차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까지 서울시청 앞에서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한양대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들이 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숙사 신축을 촉구하고 있다. 한양대 총학생회는 기숙사 신축 여부가 결정되는 6일 21차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까지 서울시청 앞에서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경애(가명·67)씨는 2003년 지물포·장판 대리점을 했던 남편이 은퇴할 시기가 되자 김치를 납품하는 대리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서울 시내 곳곳에 김치를 납품하면서 이씨가 특히 눈여겨본 곳은 대학 근처 ‘고시텔’이었다. “고시텔은 보증금 없이 월세만 받고, 삼시세끼 식사를 챙겨주잖아요. 지역 학생들이 서울 와 살기에 편한 구조라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했어요.” ▶관련기사 : 주민들 반대로 첫삽도 못 뜬 대학 기숙사 ‘수두룩’

일부대학 기숙사 운영 시작하자
임대업자들 “재산권 침해” 주장
“10년 세줘야 원룸 개조비 본전
3~4년 된 사업자는 날벼락”

학생들 “그들의 이기심에 불과”
대학가 최저주거기준 크게 미달
전문가 “학생-임대업자 대결 아닌
대학생 주거공공성 차원 접근을”

대학·지자체 갈등해소 적극 나서야
교육부 “주민들 설득하는 게 최선”
운동장, 도서관 개방 등 혜택도
미등록 임대업자 양성화 선행돼야

이씨는 2004년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건물 두개 층을 빌려 본격적으로 임대사업에 뛰어들었다. 건물 보증금 8천만원과 리모델링 비용 2억4천만원을 들여, 6년간 50여개 방을 운영하면서 한달 평균 700만원 수익을 냈다. “무엇보다도 한양대 근처니까, 학생들 믿고 한 거죠.” 자신감이 붙은 이씨는 2010년 운영하던 고시텔을 친언니에게 넘기고 한양대 후문 지역인 사근동의 3층짜리 건물을 샀다. ‘생계 유지 겸 노후 대비’를 위해서였다고 한다. 건물 전체를 고시텔로 리모델링해 2~4평짜리 방 45개를 만들고, 방 하나당 45만~60만원을 월세로 받았다. 건물 매입 자금 18억원과 리모델링 비용 4억원 등 22억원이 들었는데, 전 재산을 쏟아붓고도 9억원이 부족해 대출을 받았다. 이씨는 “조금만 하면 대출금 정도는 금방 갚을 거라 생각했다”고 했다.

너나없이 ‘노후 대비’로 뛰어든 임대업 한국은행이 공개한 ‘2017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주택을 월세로 임대하는 60살 이상 가구 수는 2012년 27만7천가구에서 2016년 42만7천가구로 최근 4년 새 15만가구나 늘었다. 임대사업에 자산 가진 노인 가구의 투자가 집중됐다는 의미다. <한겨레>가 사근동에서 만난 임대업자들도 대부분 ‘노후 대비’로 임대업을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다.

박영희(가명·64)씨도 2016년부터 사근동의 단독주택 1층을 개조해 임대업을 시작했다. 방 5개를 원룸으로 리모델링하는 데 1억원이 들었는데, 방 1개당 보증금 2천만원, 월세 25만원씩 한달 125만원의 수입을 얻고 있다. 박씨는 “식당일 하면서 무릎이 다 망가져 다른 일을 할 수 없어 세를 놓기 시작했다”며 “사근동엔 나처럼 방 몇개 세놓아 사는 나이 든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사근동의 주택 2층을 원룸 3개로 개조해 학생들을 받고 있는 이용우(가명·67)씨도 “아내와 식당을 운영하다 6년 전 그만뒀고, 노후 대비를 위해 살던 집을 개조했다”고 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빚을 갚을 수 있겠다’던 이경애씨의 확신은 2년을 채 가지 못했다. 한양대학교는 2011~2012년 학교 외부 5개 건물을 직접 임대해 외국인 유학생 기숙사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모두 합해 257명 수용 규모다. 올해는 398명 규모의 제5기숙사도 열었다. 2010년 10% 수준이던 이씨 고시텔의 공실률은 30%로 늘어 현재 방이 13개 비어 있다. 공실이 적을 땐 임대료가 한달 1000만원까지 들어왔지만, 2013년 이후엔 대출금 이자를 갚고 나면 순수입이 200만원을 겨우 넘는 달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씨는 “대출금 이자만 한달 380만원인데, 원금 상환은 아직 시작도 못했다”며 “지금은 대학 하나 보고 임대업을 시작한 게 후회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숙사, ‘재산권’ 넘어 ‘주거 공공성’으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임대업을 하는 이들 주민들은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기숙사 반대 운동에 나선다. 한양대 후문 사근동은 대표적인 갈등 지역이다. 한양대는 2015년 199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제6·7 기숙사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성동구청이 올해부터 기숙사 건립 심의에 들어가자, 사근동의 민간 임대업자들과 공인중개사들이 주축이 돼 ‘한양대기숙사 건립반대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이경애씨는 “일방적으로 기숙사 신축을 추진하는 건 사근동 주민들을 죽이는 행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근동에서 20여년간 부동산사무실을 운영한 박아무개 공인중개사는 “주택을 원룸으로 개조하고, 가구와 에어컨 등 시설을 넣으면 방 하나당 리모델링 비용이 최소 1500만원 정도 든다. (세금이나 이자 비용, 공실률 등을 계산하면) 리모델링 비용 본전을 뽑는 데만 10년 가까이 월세를 받아야 한다”며 “오랜 기간 원룸을 운영한 사람들은 본전을 뽑았겠지만, 3~4년 전부터 뛰어든 사람들은 날벼락을 맞은 셈”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이런 주장이 ‘이기심에 불과하다’는 태도다. 대학 관련 통계 포털인 대학알리미를 보면, 2017년 기준 한양대 서울캠퍼스의 기숙사 수용률은 12.5%로, 수도권 대학 평균(16.1%)에 한참 못 미친다. 이경은 한양대 총학생회장은 “기숙사가 새로 지어져도 여전히 서울 시내 다른 사립대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한양대 총학생회는 서울시에 기숙사 신축을 허가해달라는 학생 3000명의 서명을 전달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에게도 학생들의 쪽지 5000장을 보냈다.

전문가들은 기숙사를 둘러싼 갈등을 ‘학생 대 임대업자’의 대결 구도로 보지 말고, 대학생 주거 공공성 보장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공학)는 “집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조건으로, 기숙사를 짓는 일은 주거 공공성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통계청 자료를 보면, 서울 시내에서 관악구(37.6%, 서울대), 동작구(25.7%, 중앙·숭실대), 성북구(23.3%, 고려·국민·성신여대), 동대문구(23.2%, 경희·서울시립·한국외국어대) 등 주요 대학 밀집 지역의 최저주거기준 미달률이 가장 높다. 대학생의 주거 공공성 문제가 화두가 되는 이유다.

5일 오후 서울 성동구 사근동 한양대학교 후문 거주지역에는 부동산 뿐만 아니라 일만 주택에서도 `원룸' 또는 `방있습니다' 안내문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시는 6일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한양대 기숙사 신축 여부를 결정한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5일 오후 서울 성동구 사근동 한양대학교 후문 거주지역에는 부동산 뿐만 아니라 일만 주택에서도 `원룸' 또는 `방있습니다' 안내문을 쉽게 볼 수 있다. 서울시는 6일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한양대 기숙사 신축 여부를 결정한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갈등조정·민간임대업 양성화 함께 가야 그러나 현행 ‘대학설립 운영 규정’을 보면, 기숙사는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교육기본시설’이 아니라 필요한 경우에 만드는 ‘지원시설’로 분류돼 있다. 교육부의 대학평가 항목에도 기숙사를 비롯한 주거 지원은 반영되지 않는다. 대학은 기숙사 신축에 미온적이고, 민간 임대업자들은 ‘기숙사 설립이 생존권을 침해한다’며 기숙사 반대 운동의 전면에 나선다. 갈등을 조정해야 할 지방자치단체는 ‘표심’이 되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 수세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기숙사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대학과 지자체가 ‘조정자’ 역할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인 민달팽이유니온 조현준 사무처장은 “기숙사 갈등이 불거지면 대학이나 지자체에서는 주민공청회 등 형식적인 절차만 거치는 경우가 많다”며 “주민들에게 학생들의 상황을 이해시키려면 지자체와 학교가 적극적으로 나서 갈등을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축 기숙사 건립 문제로 지역 주민과 갈등을 빚었던 세종대학교는 타협을 위해 지자체가 나선 모범사례로 꼽힌다. 2013년 세종대가 90실 규모의 신축 기숙사 계획을 발표하자, 군자동 인근 주민들은 강하게 반대했다. 갈등이 길어지자 광진구청은 2015년 구청과 세종대, 군자동 주민협력위원회를 모은 ‘3자 협의체’를 마련해 기숙사를 짓는 대신 대학교 운동장·도서관 등을 개방하기로 하면서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정석 교수는 “대학과 지역사회는 서로 상생하는 관계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주거 복지를 위해 기숙사를 확충하면서도, 대학이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주거복지 로드맵’에서 2022년까지 학내외 기숙사 입주 인원을 5만명 확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 교육시설과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기숙사 설립이 주변 임대시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기숙사로 인한 갈등이 있을 때마다 최대한 주민들을 설득하는 게 최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미등록·비등록 민간 임대사업자들을 양성화하는 절차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임차가구는 826만가구로 추산되지만, 국토교통통계연보(2015)에 등록된 민간 임대주택은 68만호에 불과한 수준이다. 참여연대 홍정훈 복지팀 간사는 “대학가 인근의 미등록·비등록 민간 임대사업자들이 얻는 임대소득을 확인하고 세금을 매기는 등 제도권으로 끌어내는 과정이 진행돼야 적정 임대수익이 얼마일지, 실제 기숙사로 인해 입는 손실이 어느 정도일지를 가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금비 신민정 최민영 기자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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