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성차별 성폭력 끝장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18일 오후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규탄하며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을 출발해 행진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수행비서를 성폭행·강제추행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에 대한 비판이 거센 가운데 전국법학전문대학원의 학생들도 1심 재판부를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젠더법학회 연합(젠더법 연합) 19일 페이스북에 “안희정 1심 재판부는 ‘업무상 위력’에 대해 1998년 대법원 판례보다 후퇴한 기준을 적용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및 간음의 구성요건을 대법원 판결보다 엄격하게 해석한 근거에 대한 합당한 답을 내놓으라”며 1심 재판부를 강력히 비판했다. 젠더법 연합은 “안희정 1심 재판부의 판결은 위력의 존재와 행사를 구분하지 않고 피해자의 강한 저항의 존부를 문제 삼지 않는 기존 대법원 법리보다 훨씬 후퇴했다”며 “피고인이 유력 대선 후보이자 도지사로서 상당한 사회적·정치적 지위에 있었던 점, 피고인 스스로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자인한 점,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표시했던 점을 고려할때 피고인과 피해자의 성적 관계에서 위력 행사가 수반되지 않았다는 판단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젠더법 연합은 1심 재판이 사실상 안 전지사에 대한 심리가 아닌 피해자 김지은(33)씨에 대한 심리로 진행된 점을 비판했다. 젠더법 연합은 “재판부가 심리의 초점을 위력 ‘행사’와 피해자의 자유의사 제압 여부로 옮겨 사실상 재판이 피고인이 아닌 피해자에 대한 심리로 흘러가게 했다”며 “범행 사실을 잊으라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송한 사실, 합의한 관계가 아니었음을 인정하는 입장문을 냈던 사실, 피해자의 업무용 핸드폰을 초기화 하여 증거를 인멸한 사실 등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고도 남을 증거들에 대한 심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범죄의 유력 증거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한다는 명목하에 피해자의 평소 언행, 지인과 주고받은 메시지, 사건 발생후 피해자의 대응과 태도, 나이, 학력, 결혼 여부 등 사실상 피해자의 전 인격에 대한 광범위한 ‘품행심판’을 진행하였다”고 비판했다.
김씨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와 맥락을 재판부가 외면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젠더법연합은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다양한 유형의 성폭력을 폭력의 범주로 포섭하는 개념이자 지향해야 할 당위적 가치임에도 재판부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을 왜곡하여 피해자를 비난하고 성폭력 피해 인정범위를 좁히는 도구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젠더법연합은 이어 재판부가 현행법으로는 안 전 지사를 처벌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며 ‘노 민스 노’(No means No)를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도 “그간 법원이 강력하게 주장해온 법해석 및 적용권한의 전속기관으로서의 소임을 방기하는 변명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고 비판했다.
전국법전원젠더법학회연합회는 고려대·서강대·서울대 등 8개 대학의 법학전문대학원 소속의 젠더 모임이 참여하고 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