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서울 동작구 상도동 다세대주택 공사장의 흙막이가 무너져 근처에 있는 상도유치원 건물이 기울여져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6일 오후 1시25분께 4살 손자의 하원을 위해 서울 동작구 상도유치원을 찾은 60대 ㄱ씨는 건물 한편에 ‘접근금지’ 줄이 쳐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ㄱ씨가 접근금지 줄을 넘어가 보니 건물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건물 벽과 바닥 사이에 3~4㎝의 금이 가 있었고, 기둥에도 세로로 균열이 나 있었다. ㄱ씨는 불안한 마음에 교육청에 연락했고, 교육청은 건물 관련 문의는 구청으로 알아보라고 안내했다. ㄱ씨는 다산콜센터를 통해 동작구청에 상도유치원 건물 상황에 대해 확인이 가능한지 문의했고, 오후 4시11분께 동작구청에서는 문자가 한 통 왔다. “해당 내용은 이미 감리자에게 통보하였으며 시정조치를 실시할 예정입니다”. 그날 밤 11시22분께 ㄱ씨가 둘러봤던 유치원 건물 동편은 지반침하로 무너져 내렸다. 불과 수시간 전 손자와 함께 상도유치원에 있던 ㄱ씨는 사고 소식을 듣고 말 그대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6일 밤 동작구 상도동의 49세대 규모 공동주택 공사장에서 흙막이가 붕괴하면서 가로, 세로 50m 크기의 지반침하가 발생했다. 흙막이는 지반을 굴착할 때 지반이 붕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우는 가설 구조물이다. 흙막이 붕괴는 바로 인근에 위치한 유치원 건물 일부를 무너뜨렸다. 공사장 근처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상도 유치원이 10~20도 기울었고, 유치원 동편 건물 일부가 지반침하로 무너져내렸다. 사고 당시 시간이 늦어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인근 주민 22세대 38명은 상도4동 주민센터 등 외부숙소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인근 주민들은 지반침하 이후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인근 다세대 주택에 거주하는 주민 송아무개(57)씨는 “밤 11시 정도 됐을 때 우르르 쾅쾅 소리와 함께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 밖을 나가보니 주민 여럿이 유치원 쪽에 모여있었다”며 “밤새 잠도 못하고 주민들과 걱정을 나눴다”고 했다. 주민 김아무개(71)씨는 “일주일 전에 금천구에서 땅이 꺼져 내렸다는 이야기 듣고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렇게 우리 집 앞에서 땅이 무너져 내릴 줄은 몰랐다”면서 “공사현장 인근마다 땅이 무너져 두려워 살 수가 없다”고 말하며 혀를 찼다.
상도유치원에 손자가 다니는 주민이 사고 당일 오후 4시께 동작구청에서 받은 메시지. 주민 제공
사고 징후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이날 사고현장을 찾은 유치원 관계자는 “지날달부터 유치원 바닥에 30~40mm의 균열이 발생하는 등 사고 징후가 있었지만, 공사업체는 소극적으로 반응했다”고 주장했다. 이미 지난 3월 유치원의 의뢰로 현장을 찾았던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토목공학과)는 “해당 지역 지반이 편마암으로 구성돼 철저한 지질조사 없이 설계, 시공을 하게 되면 붕괴될 위험성이 크다”는 의견을 냈었다. 이에 상도유치원은 지난 5월 구조 안전진단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계측을 실시했고, 6월과 7월 두 차례 계측기에서는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8월22일 계측에서 균열이 발견돼, 사고 전날인 5일에 유치원장과 동작관악교육지원청 관계자, 공사현장 관계자 등이 모여 대책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 공사업체는 안전조치 계획을 제출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부실한 기초공사로 인해 연이은 폭우로 약해진 지반이 버티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박종국 경실련 시민안전감시위원장은 “금천구 오피스텔 지반 침하와 아주 유사하다”면서 “우리나라도 이제 아열대 기후와 비슷해지면서 폭우가 잦아지는데 건축현장에서는 여전히 재래식 흙막이 공법을 비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고집하면서 문제가 연이어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유치원 건물 자체의 기초공사가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박 위원장은 “기초공사를 제대로 했다면 유치원 건물의 일부가 저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유치원 파일 기초공사를 제대로 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7일 오전 서울 동작구 상도동 다세대주택 공사장의 흙막이가 무너져 근처에 있는 상도유치원 건물이 기울여져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동작구청은 이날 오전 11시30분 사고 현장 부근에서 브리핑을 갖고 급격한 추가 붕괴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영호 토질기초 기술사는 “건물의 절반 정도가 무너져내렸지만 급격한 추가붕괴는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면서 “점진적인 침하는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이를 막기 위해 흙을 덧대 지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해룡 동작구청 건축과장은 “유치원 건물 구조가 다 철근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우르르 무너져 내릴 가능성은 없어 대피했던 인근주민들은 모두 귀가 조처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했음에도 구청에 대응이 미온적이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유치원에서 자료를 요청할 때마다 자료를 드렸고 해당 업체에 보완지시를 했다”고 답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