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대 캠퍼스에 붙은 ‘레논 월’의 모습. 지난 18일 레논 월이 훼손된 채 발견되면서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은 20일 재물손괴 혐의로 서울 관악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전광준 기자
대학가에서 중국인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 훼손 사건 등이 이어지면서 중국인 유학생을 지탄하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일부 대학 커뮤니티에 “중국인은 그냥 싫다”는 글이 올라오는 등 중국인 유학생들에 대한 혐오 표현까지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인 유학생들 사이에서도 “홍콩 시위를 지지해야 한다”는 다른 목소리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고려대를 다니는 중국인 유학생 ㄱ(22)씨는 20일 <한겨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홍콩 시민들은 홍콩의 민주주의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베이징에 있는 권위주의 정부가 중국 유학생과 홍콩 유학생들의 공동의 적”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민주주의가 자리 잡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홍콩 시위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ㄱ씨도 처음에는 홍콩 시위에 “중립”적인 입장이었다고 한다. 홍콩 시위가 반송중(중국 송환 반대)에 머물러 있는 줄만 알았던 것이다. ㄱ씨는 “점점 그 문제를 넘어서 홍콩 시민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시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홍콩 시민들의 목소리를 오랫동안 무시한 중국과 홍콩 정부 때문에 문제가 누적돼 왔다. 홍콩 시민들은 결코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한양대와 전남대 등 대학 곳곳에서 이뤄지는 중국인 유학생들의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 훼손에 관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ㄱ씨는 중국 유학생들이 펼치는 극단적인 행위의 원인 중에 하나로 ‘중국 정부의 가짜뉴스’가 있다며 중국 유학생에 대해 비판하는 한국인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밝혔다. “중국에는 ‘회색 영역’이 없어요. 흑백만이 있을 뿐이죠. 중국에서 살 때부터 그들은 민주주의나 관용에 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요. 중국 정부가 퍼트리는 국가주의적 선전과 가짜뉴스 영향을 많이 받는 거 같아요. 중국 유학생들은 중국 밖에 있지만 여전히 중국 내 매체밖에 보지 않아요. 제발 다양한 매체를 보면서 왜 홍콩 시민들이 싸우고 있는지 이해하면 좋겠어요.”
서울의 또 다른 대학에 다니는 ㄴ씨도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중국인 유학생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같은 중국 독재 정부 아래에 있기 때문에 이에 복종하지 않는 홍콩 시위를 반드시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ㄴ씨 역시 중국인 유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애국 애당 교육’을 받아 홍콩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중국인 유학생들에 대한 이해를 구했다. “중국인들은 자신이 받은 교육에 따라 어떤 사람이 정부와 다른 소리를 내면 덕성이 없고 국가를 분열하는 짓을 일삼는 배신자라고 지적해요.”
ㄴ씨는 아울러 중국 정부가 중국 국민 모두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중국 정부와 중국인을 나눠서 보면 좋겠어요. 중국 정부는 절대 중국 국민을 대표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도 중국인이 아니라 화인(혈통과 인종은 중국이지만 정치적 충성심은 없는 중국인을 일컫는 말)이라고 저를 소개해요. 다른 중국인들은 왜곡된 세뇌 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아왔어요. 자유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ㄱ씨와 ㄴ씨는 중국 유학생 대다수가 대자보를 훼손하는 등의 극단적 행위에는 비판적이지만 심정적으로는 공감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소수지만 중국인 유학생, 심지어 중국 내에서도 분명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고도 했다. 그 ‘소수자’들은 중국 당국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요즘 중국에서도 정부를 강력히 지지하던 사람 중에 자신의 이익이 정부에 의해 손해로 돌아오는 걸 보고 나서 민주 사회를 지지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요. 진상을 알게 되면 중국 유학생들의 입장 전환은 시간문제일 겁니다.” ㄴ씨의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중국과 중국인들에 대한 일각의 혐오 현상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은 20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서울대 대자보 훼손 관련 고소장을 제출하면서도 “(대자보 등) 훼손 시도들이 한국 대학가에서 혐중 정서로 이어지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정의당 서울시당 학생위원회도 지난 19일 서울대에 붙인 ‘홍콩 민중의 투쟁을 지지한다’는 대자보를 통해 “우리는 홍콩 시위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과는 별개로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혐오 정서 확산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이들 역시 억압적 체제의 피해자이며, 제노포비아적 혐오는 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권을 위해 싸우는 홍콩 시민들에 대한 모욕적 행위로 귀결된다”고 밝혔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혐중 현상은) 대자보 훼손 행위를 개인이 아니라 집단 전체, 더 나아가 국가에 동일시하는 경향 때문에 나타난다”며 “비판은 대자보 훼손 행위 자체에 대해 이뤄져야 한다. 개인의 행위 자체가 아니라 직접 관련이 없는 집단이나 국가를 연결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혐오를 조장하는 감정적 반응”이라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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