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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80년 5월21일 나주에서 ‘저항의 총’ 시작됐던 이유 밝혔죠”

등록 2020-05-25 19:51수정 2020-05-26 02:04

[짬] 5·18민주유공자 나주동지회 김기광 회장

김기광 회장은 1980년 5월 18살 시민군으로 광주항쟁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했다. 사진 5·18민주유공자 나주동지회 제공
김기광 회장은 1980년 5월 18살 시민군으로 광주항쟁 마지막 순간까지 저항했다. 사진 5·18민주유공자 나주동지회 제공

“그때는 총을 들고 이웃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기억을 남겨야 합니다.”

1980년 5·18민중항쟁 때 시민군 기동타격대로 활약했던 김기광(58·자영업)씨는 24일 “항쟁의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는 일이야말로 살아남은 사람의 책무”라고 말했다. 김씨는 최근 5·18 40돌을 맞아 484쪽짜리 생존자 구술집 <5·18과 나주사람들> 1000부를 펴냈다. 2010년 회원 137명인 5·18민주유공자 나주동지회장을 맡은 지 10년 만에 숙원이던 큰 짐을 덜었다. 5·18과 관련해 광주 이외 지역에서 주민 봉기 상황을 일지로 정리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18과 나주사람들’ 구술집 펴내
공무원·경찰·예비군 중대장도 ‘증언’
‘공수부대 집단발포에 시민무장’ 확인
“광주와 전남지역 연결 ‘교두보’ 구실”

고3생으로 시민군 기동타격대 활동
“올바른 기록도 살아남은 자의 책무”

“나주는 피 흘리는 광주에 총기와 사람을 지원한 거점이었지요. 남쪽으로 영암·강진·해남, 서쪽으로 함평·무안·목포까지 항쟁을 연결한 교두보 구실을 했어요. 적지 않은 인명 피해도 입었지만, 증언과 자료가 부족해 늘 아쉬웠습니다.”

그는 나주사람들의 의로운 항쟁사를 기록하자고 나주시와 시의회를 설득했다. 지난해 6월 화답이 오자 편찬위원회를 구성해 곧바로 채록과 집필을 진행했다. 나주의 저항을 5·18 전체 역사 속에서 조명하려고 정성을 쏟았다.

맨먼저 시민군 등으로 참여한 생존자 28명의 증언을 들었고, 군청 공무원·경찰서 경찰관·예비군 중대장 등 관공서 관계자들의 구술을 받는 등 관련자 35명의 체험을 정리했다. 5·18 연구가인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의 감수를 받아 구술자의 혼동이나 착각이 없는지도 살폈다.

“기존 5·18 자료는 대부분 가해자 또는 피해자의 한쪽 시각에서 만들어졌어요. 나주항쟁사는 민·관·군·경의 다양한 상황과 시각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했지요. 지서의 무기고 피탈 시간을 두고 벌어진 ‘집단발포가 먼저냐, 시민무장이 먼저냐’는 공방도 끝낼 수 있는 진술도 들어있어요. 증언 한 마디 한 마디가 쌓여서 역사의 진실을 구성하는 거지요.”

그의 말대로, 책에 담긴 5·18 때 나주 반남·남평지서 2곳의 무기고 피탈 시간에 관한 자료와 증언은 눈길을 끈다. 계엄군이 왜곡한 자료에는 두 지서의 피탈 시간이 5월21일 오전 8~9시로 나온다. 하지만 이후 경찰 조사나 검찰 수사를 보면 피탈 시간은 이날 오후 1시30분~5시40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때 현장 참여자나 경찰서 당직자의 증언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계엄군이 전남도청 앞에서 민간인을 향해 집단발포를 시작한 시간은 21일 오후 1시다. 따라서 ‘집단발포가 먼저 자행됐고, 이에 맞서 시민들이 자위에 나섰다’는 사실이 재확인된 셈이다.

이 책은 또 계엄군에 의한 2건의 성폭행(날짜 미상, 피해자 4명 추정), 나주경찰서의 지역기관대책회의(5월 23일 오후 4시), 송월동 예비군 관리대대의 두 차례 발포(5월 21일 오후 6시30분, 23일 오전 11시) 등 진상규명이 필요한 사안들도 새롭게 제기했다.

책의 말미에는 5·18항쟁의 전체 진행 국면과 나주 상황을 시간대별로 비교한 도표도 실었다. 시민군으로 항쟁에 참여했거나 시위와 관련없이 숨진 사망자 10명의 아픈 사연도 담았다. 부록에는 5·18묘지 등에 묻힌 나주 출신 5월열사 37명, 구속기소자 24명, 기소유예자 13명, 훈방자 177명의 명단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김씨는 “40년 전 그때 항쟁의 전열에 나섰지만 유공자로 신청하지 않으신 분들이 10여명이나 된다. 몇분은 트라우마 탓인지 끝내 진술을 거부하거나 포기하고 말았다. 참여자들이 돌아가시면 더는 진실을 들을 수 없다. 나주가 먼저 한 발을 내디뎠으니 목포 해남 화순 등에서도 채록을 진행해 전체 역사를 채워야 한다”고 말했다.

1962년 나주에서 5남매의 세째아들로 태어난 김씨는 80년 나주한독공고(나주공고) 3학년이었다. 부친이 예비역 대위 출신으로 재향군인회에서 일했던 까닭에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았을 뿐더러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도 닮았던 그는 “공수부대가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총으로 쏴 죽인다”는 말을 듣고 분노해 항쟁에 뛰어들었다. “5월21일이 부처님오신날 휴일이어서 전날 세지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이튿날 집에 가려고 나왔는데 이미 차가 끊겨 있었어요. 그러다 강진과 영암 일대를 돌고 올라오는 시위대의 버스를 만나 친구와 친구 선배와 함께 올라탔죠.” 그는 이날 오후 2시께 나주 금성파출소에서 시위대의 트럭이 후진해 무기고를 부수자 카빈소총으로 무장한 뒤 전남도청으로 들어갔다. 이후 상무관에서 희생자의 주검을 수습하다 시민군 순찰대와 기동타격대 등으로 활동했다. 27일 새벽 광주 대인동 버스터미널을 방어하다 계엄군에 붙잡혀 상무대로 끌려간 뒤 ‘극렬분자’로 분류돼 모진 고문을 당했다. 군법회의에서 같은 해 10월 내란 부화수행죄로 단기 1년, 장기 1년6월의 징역을 선고받고, 11월 초 석방됐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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