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살인가 네살 때, 막내인 자신에게 ‘작은 선녀’라 이름 지어주었던 아버지는 항일 농촌운동을 하다 일제에 끌려가 소식이 끊겼다. 열다섯에 근로정신대로 방직공장에 끌려가 콩깻묵에 밀가루 섞인 주먹밥을 먹으며 하루 14시간씩 강제노동을 하다 죽을 각오로 도망쳐 나왔다. 결혼 뒤에도 삶은 신산했다. 콩밥, 보리밥이 뒤섞인 ‘울긋불긋 밥’을 얻어 아이들을 먹이기도 했다. 마흔한살에는 큰아들을 잃었다.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니가 원하는 거 끝까지 할 거다!” 구슬을 문 잉어가 가슴으로 파고드는 태몽을 꾸고 낳았던 아이, 전태일을 떠나보내며 그렇게 다짐했다. 삶의 나머지 41년은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았다. 9월3일은 돌아가신 지 9주기가 되는 날. 빨간 머리띠에 근로기준법 책을 품에 안은 아들을 지켜보며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누워 계신다.
남양주/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