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31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 지역아동센터 자치구협의회 주최로 열린 아동권리대회에서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이 아동에 대한 차별 금지를 촉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는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앗아갔다. 학교가 자주 문을 닫으면서 따뜻한 밥과 어울릴 친구, 그리고 애정 어린 돌봄을 기대할 만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 초등학교에서 긴급돌봄을 운영했지만 저마다 다른 아이들의 사정을 낱낱이 살피기엔 역부족이었고, 저녁 시간까지 돌봄을 하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이 돌봄 공백을 지역아동센터가 상당 부분 메웠다. <한겨레>가 ‘지역아동센터 쌤으로 지낸 한달’ 기사를 통해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아이들이 편견 없이 어울리는 센터의 풍경을 전한 것도 이런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돌봄기관으로서 센터의 위상과 관련해 “이전에는 학교 교사들이 가정 방문을 했지만 지금은 개인정보라고 해서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며 “센터는 각 가정의 사정을 잘 알고 있고 아동을 개별화해 돌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진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이제 센터가 저소득층 아동만 다닌다는 ‘꼬리표’를 떼고, 공공성을 강화해 보편적 돌봄기관으로 진화할 시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모든 계층의 아이들에게 문을 열어야 지역아동센터의 장점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센터가 법제화된 2004년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아동복지사업 안내’를 보면, 당시 정부도 센터의 목표를 “시설에 보호된 요보호아동 중심의 아동정책에서 일반아동까지 정책 대상을 확대 추진”이라고 잡았다.
그러나 ‘저소득층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라는 낙인이 형성되며 센터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고질적인 예산 부족 때문에 센터는 언론 홍보를 통한 후원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었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생겨났다. 선별복지를 중시하는 보수 정부에서 센터 이용 아동의 자격을 가구소득 기준으로 정하면서 이런 이미지는 더 굳어졌다. 2011년부터 센터 이용자 가운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차상위 계층 등 ‘우선보호아동’의 비율이 60%로 유지됐다. 2016년에는 기준 중위소득 100% 이하 가정의 아동만 센터를 이용할 수 있게 자격을 바꿨다. 현재는 센터 정원의 60%는 중위소득 100% 이하, 40%는 소득 기준에 상관없이 아동을 받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이미 생긴 낙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들어 온종일 돌봄 체계 구축과 틈새 돌봄 강화를 위해 지역아동센터와 별도로 2022년까지 3560억원을 투자해 다함께돌봄센터를 확충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들은 이 사업이 역으로 센터의 낙인 효과를 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다함께돌봄센터(돌봄센터)가 만 6~12살 초등학생을, 지역아동센터는 18살 미만 초등·중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 외에는 운영시간이나 프로그램에서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지역아동센터는 가구소득 기준으로 아동의 이용 자격을 제한하고, 돌봄센터는 별다른 기준 없이 월 10만원의 이용료를 받는다. 500가구 이상 신축 공동주택에는 돌봄센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이 지난 1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는데, 이 역시 지역아동센터와의 돌봄센터의 ‘위계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ㄱ씨는 “지역아동센터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 단지 내에 설치되고 있는데 돌봄센터는 브랜드 아파트에 설치되는 셈이 됐다. 정부 정책이 두 기관을 차별하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역아동센터가 지역 안에서 돌봄이 필요한 모든 아동이 이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복지국가의 성장기에는 빈곤 아동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지만 성숙기에 도달한 지금은 상황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5개 지역아동센터 단체들로 구성된 ‘지역아동센터 바로세우기 운동연대’도 2019년에 “저소득층 아동만 센터를 이용하게 하는 것은 아동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야기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다. 이원익 부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센터에 다니는 아이들이 학원에 다닌다고 말하거나, (노출을 꺼려) 센터 간판도 작게 다는 경우가 많다”며 “아동복지의 경우 보편복지가 저소득층 아동에게 제일 효과적이라는 해외 연구도 다수다. 다양한 계층의 아이들이 어울려야 사회통합 기능도 극대화된다”고 말했다.
소득 기준을 없애는 동시에 중복되는 돌봄기관 간의 통합이나 역할 조정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원익 교수는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돼 지역아동센터나 돌봄센터 등 각종 방과후 돌봄 사업을 지역 사정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아동센터의 수는 2017년 4189곳, 2018년 4211곳, 2019년 4211곳, 2020년 4138곳으로 정체 중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다함께돌봄센터는 2017년 시범사업 10곳을 시작으로 2018년 17곳, 2019년 173곳, 2020년 221곳으로 늘었다. 정부는 2022년에 이를 1817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지역아동센터 시설장과 복지사들이 2019년 1월1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지역아동센터 예산사태 해결을 위한 추경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역아동센터가 보편적 돌봄 기관으로 거듭나려면 지금보다 공공성을 크게 높이는 게 시급한 과제로 꼽히고 있다. 민간이 중심이 돼 센터를 운영하다 보니 서비스의 질도 천차만별이다. 개인 운영의 비중(2019년 기준 69.9%)이 큰 탓에 회계 부정 등 일부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낮은 공공성이 센터 종사자의 열악한 처우 등 여러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익중 교수는 “예산을 편성할 때 기획재정부는 민간이라서 지원을 더 해주기 어렵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제는 신뢰와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도 공공성을 확보해야 하는 단계에 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 몇년간 지역아동센터의 사회적 협동조합 전환 등 법인화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들은 공공성 강화에 공감하지만 전환 과정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센터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집계를 보면, 지난해 약 400곳의 지역아동센터가 협동조합으로 전환했는데, 이는 전체 센터의 10%에 해당한다. 최선숙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사무총장은 “아이들 돌봄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지 정부 정책에 협조하겠다는 것이 센터 운영자들의 마음”이라며 “다만 (법인화를 위해) 여기저기 물어가며 법무사나 회계사 도움을 받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협동조합 전환에 대한 인센티브도 150곳을 뽑아 월 60만원을 지원하는 게 전부였다. 법인화를 위한 정부 지원이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숙 아동권리보장원 아동정책평가센터장도 “정부가 법인으로 전환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이도록 돕고 지속적인 컨설팅을 제공하는 등 절차적인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정부·지자체 ‘빠듯한 지원’…민간후원 없으면 운영 안돼요
지역아동센터 1년 살림살이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지원금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빠듯한 지원 탓에 민간 후원에 기대지 않으면 운영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
보건복지부 조사를 보면, 2019년 기준 지역아동센터 1곳의 연간 평균 수입은 1억3689만원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보조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기본운영비 6387만원, 추가지원금 4744만원 수준이었다. 여기에 지자체의 별도 지원금이 1546만원 정도다. 나머지 수익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기업, 비영리 민간단체, 개인 후원 등으로 각각 877만원, 510만원, 616만원, 711만원 정도다.
올해 예산 기준으로 센터의 한달 평균 살림살이를 살펴보면 기본운영비는 530만~577만원(법정 종사자 2명 기준)인데 2명의 인건비(월 최저임금 약 182만원+사회보험료·퇴직금)와 프로그램비를 제외하면 사용 가능한 운영비는 평균 45만~87만원 정도다. 이 돈으로 운영관리비, 시설비 등을 부담한다.
취약한 재정 구조는 지역아동센터의 질을 하락시키는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왔다. 이원익 부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센터가 제도화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이에 걸맞은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다른 사회복지시설에 비해서도 예산이 턱없이 적은 편이고 운영비에 인건비가 포함돼 프로그램의 질을 담보할 수 없고 수준 높은 인력이 함께 갈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간혹 벌어지는 횡령 범죄도 이런 재정 구조 탓에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7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대법원 판결문 열람시스템에서 확인한 지역아동센터 관련 사건 21건 중 횡령과 같은 재산 범죄가 9건으로 가장 많았다. 유령 직원을 신고해 급여를 받거나 급식비를 부풀리는 식으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빼돌리는 유형이 대부분이었다. 광주광역시 등에서 지역아동센터 4곳을 운영·관리하는 ㄱ씨는 실제로 근무하지 않는 생활복지사의 급여를 빼돌려 86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로 2017년 5월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대전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ㄴ씨는 식자재 구매업체에 대금을 부풀려 결제하고 차액을 돌려받아 구청이 지급하는 결식아동 급식지원비 5600여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3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전문가들과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은 그동안 인건비와 운영비를 분리하고 다른 사회복지시설과 같은 인건비 가이드라인의 적용을 받도록 해야 돌봄의 질이 향상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정부는 개인 소유가 70%에 가까운 지역아동센터도 법인이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로 전환해야 비슷한 지원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센터 쪽도 대체로 법인 전환에 찬성하지만, 전환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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