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숙 구로파랑새센터장이 지난 6일 서울 구로구 센터에서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서울 구로구의 한 목욕탕 상가 3층에는 ‘파랑새’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방 두개와 넓은 마루가 있는 공간에서 37명의 아이들이 생활한다. 오전 10시부터 모여든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을 듣고 문제지를 풀고 일기를 쓰고 치어리딩도 배운다. 저녁 7시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면 ‘태쌤’도 비로소 하루를 마무리한다.
성태숙(55) 구로파랑새지역아동센터 시설장은 2002년부터 아이들과 함께했다. 성 시설장과 함께했던 아이들만 수천명이다. 10년 가까이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을 맡아 아동 돌봄 정책 개선에 목소리를 냈다. 그런 그가 이젠 ‘지역아동센터’라는 이름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못사는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라는 편견에 발목 잡힌 과거를 버리고 모든 아이를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돌봄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호소한다.
성 시설장에게 10대 시절을 보낸 구로는 애증의 공간이다. 그에게 구로는 시골에서 돈을 다 날리고 국수를 팔러 올라온 아버지처럼 맨몸뿐인 사람들이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거쳐 가는 ‘변방’이었다. 언제나 탈출을 꿈꿨다. 그러나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번번이 구로로 돌아왔다. 독일로 가는 꿈을 꾸며 1986년 서울대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학생운동의 열기가 성씨의 길을 바꿨다. 목청이 좋다는 이유로 노래패에 들어간 성씨는 대학생 1500여명이 연행된 건국대 사태를 겪은 뒤 두려움 탓에 거리 투쟁에 참여하지 못했다. 대신 자신이 사는 구로역 근처에서 노동자 야학을 접하고 동네 아이들을 처음 만났다. 그때의 기억이 그를 다시 공부방으로 이끌었다. 영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온 2002년, 구로의 공부방 선생님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고 선뜻 수락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공부방은 단칸방 하나가 전부였고, 골목에 천막으로 지붕을 얹어 부엌으로 썼다. 거칠고 서툰 아이들은 날마다 돌아가며 말썽을 부렸다. 그래도 아이들을 떠나지 못했다.
성태숙 구로파랑새센터장이 지난 6일 서울 구로구 센터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그는 공부방-지역아동센터 현장에서 20년 동안 느낀 걸 한마디로 요약했다. “정부가 지역아동센터를 돌봄의 이중대로 여긴다는 거예요.”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자신의 브랜드가 될 방과후 돌봄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 했고, 지역아동센터는 점점 주변부로 밀려났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온종일돌봄체계를 구축하겠다며 부모의 소득과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는 다함께돌봄센터를 만들었다. 그 결과, 정체성에 대한 지역아동센터의 고민은 그 어느 때보다 깊어지고 있다.
“빈곤 아동 복지 서비스가 필요하긴 하지만 지역아동센터가 충분히 할 수 없으니 드림스타트를 만들고, 방과후 돌봄 서비스가 필요하다면서 다함께돌봄센터를 만드는 식이에요. 지역아동센터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온전한 돌봄 서비스 제공처로 여기지 않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죠. 제일 답답한 것은 정부가 지역아동센터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점이에요. 다함께돌봄센터 위주로 가길 원하고 지역아동센터는 차츰 없어지기 바라는 걸까요? 차라리 그렇다고 말해주면 좋겠어요. 아이들의 방과후 돌봄을 누가 얼마만큼 책임져야 하는 건지, 정부의 어정쩡한 입장이 현장을 힘들게 하고 있어요.”
그는 국가가 아동돌봄체계를 일원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지역에서 클러스터형으로 아동돌봄기관을 운영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읍면동 등 지역 단위로 지역아동센터를 비롯한 방과후 돌봄기관을 기능별로 한곳씩 둔 뒤 서로 인력을 공유하고 연계하는 방식이다.
“동네가 아이들을 돌본다는 취지로 초등학교 저학년은 초등돌봄교실에서, 고학년은 지역아동센터에서 지내고 외부활동을 더 하고 싶은 아이들은 다함께돌봄교실을 이용하는 등 생애주기별로 돌봄을 제공하는 식이에요. 이 안에서 교사들이 순환보직을 하고 같은 처우를 보장받고, 지자체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게 어떨까요. 물론 어떤 정부라도 칼자루를 쥐고 싶진 않겠죠. 그래도 정리를 해야 해요. 아이들에게 더 좋은 돌봄을 제공할 수 있다면, 지역아동센터라는 이름이 없어져도 뭐가 대수겠어요. 지난해 코로나 때도 마음 같아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아이를 돌보고 싶었는데….”
“태쌤 어딨어요?” 밖에서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에 물 흐르듯 이어지던 성 시설장의 말이 뚝 끊겼다. “어쩌죠. 아이들이 이제 점심을 먹을 때가 돼서요.” 파랑새와 성 시설장의 하루가 또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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