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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민주화 사망·부상자 예우는 ‘국가 미래’ 위한 일이죠”

등록 2021-06-09 18:28수정 2021-06-10 02:35

[짬] 이한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오른쪽 두 번째)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유가협 사무실에서 장남수 유가협 회장(맨 오른쪽) 및 회원들과 함께했다. 김보근 선임기자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오른쪽 두 번째)가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 유가협 사무실에서 장남수 유가협 회장(맨 오른쪽) 및 회원들과 함께했다. 김보근 선임기자

“매일매일 사진 속 눈빛을 보는 데 요즘에는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위치한 ‘전국민족민주열사유가족협의회’(유가협)에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81) 여사가 벽에 걸려 있는 사진들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벽에는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1970년부터 민주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1997년까지 민주화의 제단에 목숨을 바친 열사들의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었다. 그 가운데 1987년 6월9일 전경들이 쏜 최루탄에 숨진 이한열 열사와 1987년 1월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열사의 모습도 뚜렷이 보인다. 두 사람의 희생은 1987년 6월 항쟁의 발화제가 되었다.

“여전히 눈빛이 살아 있어요. 살아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더 미안하죠.”

미안함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쓰러져간 열사들이 아직까지 보훈 대상인 ‘민주 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민주 유공자법’은 20여년 전인 제15대 국회 때부터 현재까지 10여 차례 발의됐지만, 한번도 소관 상임위조차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현재는 우원식 의원이 지난해 9월 발의한 법안이 상임위에 올라 있다. 민주화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부상을 당한 829명을 민주유공자로 인정하자는 내용이다.

그는 1987년 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생이던 아들 한열이가 억울하게 숨진 뒤, 지금까지 34년 동안 6월이 돌아오면 열병과 같은 아픔이 엄습해왔다고 한다

“1987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지요. 젊은이들이 이렇게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를 한 사람들에 의해 죽은 것이지요.”

그는 지난 34년 동안 이한열 열사 추모식이나 6월 항쟁 기념식 등에 참여하면 늘 참석한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해왔다고 한다.

“1987년 6월 항쟁 때 신촌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 주변을 지켜준 학생들, 교수님들, 시민들이 있었기에 한열이의 죽음이 의문사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뒤에도 6월의 따가운 햇볕 아래 추도식에 함께 참석해주시는 마음들이 있어 한열이가 꿈꾸었던 직선제를 비롯한 민주주의도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한열이를 비롯한 열사들의 사진 속 눈빛을 보면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한다. 아직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이들을 민주화에 공이 있는 유공자로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열사 등 829명 유공자 지정 법안
지난 20년 상임위 문턱도 못 넘어
현재 우원식 의원 법안 상임위에

“열사 희생 사회가 인정 안 하면
누가 사회 발전 위해 나서겠나
‘촛불정부’ 법 통과 적극 나서야”

사실 ‘민주 유공자법’에 대한 국민 여론은 나쁘지 않다. 한 예로 국가보훈처 발주로 2018년 9월에 나온 보고서를 보면, 성인 남녀 1천명 대상 조사에서 응답자의 69.2%가 민주화 운동 참여자를 보훈 대상에 포함하는 데 찬성했다. 반대는 23.9%에 불과했다.

자리를 함께한 장남수(80) 유가협 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민주 유공자법과 관련해 일부에서 제기하는 ‘자녀 대학 입시 특례’ 시비 등은 상황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망자들이 특혜를 받는 게 없습니다. 부모처자가 혜택을 받는데, 대부분 미혼인 상태에서 희생돼 처자가 없습니다. 결혼을 한 이들이 몇 명 있지만 그 자녀들은 벌써 40살이 넘었습니다. 혜택이라면 연로한 부모들에게 해당되는 의료 지원 정도가 혜택이 있겠지요.”

배은심 여사도 “유가협을 구성해 함께 활동한 부모님의 절반 가량이 돌아가실 정도로 부모님들이 연로한 상태”라며 법안 제정의 시급성을 얘기했다. 실제로 전태일 열사의 모친인 이소선 전 유가협 회장, 박종철 열사의 부친인 박정기 전 유가협 이사장 등을 비롯해 많은 유가협 회원들이 세상을 떴다.

그렇다면 유가협 회원들은 왜 민주 유공자법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일까? 유가협이 지난 7일 낸 기자회견문에 단서가 있다. 이 기자회견문에서 유가협은 ‘미래세대에 대한 교훈’을 법 제정의 필요성 중 하나로 꼽았다.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이 주장한 것이 바로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자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가 대통령 직선제를 하고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모두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평가해주지 않는다면, 미래에는 어떤 누가 자신의 이익에 앞서 사회 전체의 발전을 생각하며 행동하겠습니까?”

배은심 여사는 국가가 민주화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을 정당하게 예우해주는 것은 향후 국가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정부에서도 민주 유공자법이 처리되지 못한다면, 지금 정부가 촛불정부, 민주정부라 불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정부라면 이 문제를 이렇게 방치해두면 안 됩니다.”

그가 말을 마치고 다시 한번 사진 속 열사들의 눈빛을 바라봤다. 나라의 민주화를 고민하던 수많은 눈길들이 더욱 뚜렷하게 다가오는 듯했다. 이한열 열사도 그 형형한 눈 빛으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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