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내용을 담은 정부조직 개편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여가부가 폐지되고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가 신설되면 ‘2명의 스피커가 생겨 기존보다 (양성평등 관련) 발언권이 커진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전직 여가부 장·차관들이 이를 두고 “억지 주장”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김현숙 장관은 지난 12일 <한국방송>(KBS)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인터뷰에서 “여가부 장관이 사라지고 (여성가족부가 보건복지부 산하) 본부로 격하돼서 힘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국무회의 가서 얘기할 수 있는 분이 보건복지부 장관, (여가부 폐지 뒤 신설될)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장이기 때문에 2명의 스피커가 양성평등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창구가 생긴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과거에도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는 지난 7일 여가부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 개편방안 관련 설명회’에서 “성평등 추진체계에 대해서 말씀하실 수 있는 스피커가 2명”이라며 “여가부 장관과 본부장이 (양성평등에 관해) 일원화된 목소리를 낸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된 보이스(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6일 ‘정부조직 개편방안’ 보도자료에서 여가부 장관의 기능을 대체할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의 장에게 “산업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같이 장관과 차관 중간의 위상 및 예우 부여한다”고 밝혔다. 국무회의 규정을 보면, 통상교섭본부장은 국무위원 자격이 아니라 배석자로 국무회의에 참여한다. 의견 제시만 가능할 뿐 국무위원인 여가부 장관처럼 국무회의 심의 사항을 의안으로 제출하고 의결하는 권한은 없다.
전직 여가부 장·차관들은 김현숙 장관의 이런 의견을 놓고 “억지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정현백 전 여가부 장관은 “젠더 관련 정책은 모든 부처에 다 걸쳐 있는데, 의결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이 있는데,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장이 얼마나 국무회의에서 발언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관료제 조직문화라는 것이 있는데, 김현숙 장관도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 억지를 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영애 전 여가부 장관도 “김현숙 장관의 말대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기 조직 내 본부가 신설된다고 해서 본부에 신경 쓸 거라는 보장을 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앞으로 어떤 이슈가 나올지도 모르고 복지부 장관이 언제 바뀔지도 모른다. 복지부 장관이 기존 복지부 이해관계에 우선하고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히 여길 수도 있다”고 했다.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장을 통상교섭본부장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현백 전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이 배석자 자격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했지만, 이는 당시 정부가 통상교섭본부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이번 정부가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과연 얼마나 중요하게 여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영애 전 장관은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의 권익 업무 등은 복지부의 업무 범위를 뛰어넘는다. 이 과정에서 복지부와 의견 충돌이 있을 수 있는데, 복지부의 일원인 상태에서 장관의 견해를 반박하기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고유 기능(대외 통상 교섭을 전담)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통상교섭본부와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2명의 스피커’ 주장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숙진 전 여가부 차관도 “국무회의에서 발언자 수가 많다고 말에 힘이 실리는 게 아니다. 장관이라는 지위를 갖고 발언하는 게 중요하다. 장관 아닌 배석자 여러 명이 말하면 힘이 세다고 볼 수 있나? 행정 업무를 경험해보신 분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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