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15년째 파킨슨병 투병 김혜남 정신과 전문의
‘…사는 게 재밌는 이유’ 6번째 책
걷지 못해 기다 만난 ‘작은 세상’
렌즈에 담아 ‘물방울 사진전’도
약효 두시간이지만 “매 순간 재미” 그는 15년째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잘나가는 정신과 의사였다. 이미 쓴 5권의 책이 120만부가 팔려나간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최근 6번째 책인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갤리온 펴냄)를 쓴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56·사진)을 만나기 위해 서울 강남 역삼동에 있는 그의 집에 갔다. 그가 가장 편한 곳이다. 지난 8일 오후 그의 집에 들어서자 두 마리 개가 반갑게 꼬리를 흔든다. 한 마리는 시각장애인을 이끄는 래브라도리트리버 종인 ‘샤인’이고, 한 마리는 유기견으로 입양해 키우는 비글 종인 ‘선’이다. 둘 다 주인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는다. 한때 정신적인 치료를 위해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듯이, 이제는 두 마리의 개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가 정성껏 내려준 커피를 마시며 ‘잔인하게’ 물었다. “죽음이 두려운가요?” 그가 달고 사는 파킨슨병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생산하는 뇌 조직의 손상으로, 손발이 떨리고 근육이 뻣뻣해지고 몸이 굳고 행동이 느려지고 말이 어눌해지는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그는 담담하게 말한다. “죽음도 삶의 일부인데요, 뭘. 죽음은 삶이 완성돼 끝나는 것이죠. 그리고 내가 죽어야 다음 세대가 연결돼요.” 그는 1년 전부터 의사 직업을 접었다. 정신 상담이 장기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자신의 ‘내일’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환자 보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여겼다. 병은 그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기어 다녔어요. 그것도 아주 천천히. 한발짝 움직이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마이크로월드’가 눈에 보였어요. 아주 작은 세계를 본 거죠. 바닥 한구석에 꾸물거리는 벌레, 화분의 꽃 이파리들…. 큰 것을 잃으니까 작은 것이 왔어요.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그는 우연히 이파리 끝에 맺혀 있는 물방울을 보았다. 그 물방울엔 세상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댔다. 병든 몸에 쪼그리고 앉아 사진 작업을 했다. 작게마나 지인들을 불러 물방울 사진전을 열곤, 카메라를 놓았다. 건강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서른살들의 멘토였다. 2008년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라는 책을 써 방황하는 청춘에게 위로의 말을 주었던 그는 “지금의 서른살이 방황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족이 아닌 사회에 의해 키워지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살아야 해요. 어릴 때부터 부모는 아이에게 튀지 말고 무리 속에서 잘 적응하기만을 바라요. 타인의 시선에 목을 매요. 아프고 슬프면 어른이라도 울어야 해요. 자신의 실제 감정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요.” 그는 몸이 아프면서 육체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됐다. “그동안 몸을 너무 소홀히 했어요. 몸은 결코 두뇌(정신)를 위한 도구가 아니었어요. 몸은 어떤 한 부분이 약해지면 강한 부분이 끌고 가요. 그래서 평소에 몸에 관심을 많이 쏟아야 해요.” 정말 책 제목처럼 그는 사는 것이 재미있을까? “매순간이 재미있어요. 나이를 먹더라도 호기심을 잃지 않으면 돼요. 몸이 아파서 침대에 누워 리모컨을 돌리며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커피 내리는 것도 재미있고, 책을 쓰는 것도 재미있어요.” 그는 “멍때리는 시간을 꼭 가져라”라고 부탁한다. “밥을 먹으면 소화시킬 시간이 필요하듯이 뇌도 쉴 시간이 필요해요. 현대인들은 한순간도 뇌를 쉬게 하지 않아요. 경쟁에서 뒤처질까봐 쉼 없이 스마트폰을 검색하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보거나 들어요. 뇌는 쉬는 시간에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자극과 정보를 재배열하고 통합해서 사고를 형성해요. 잠들기 직전까지 계속되는 자극으로 뇌는 과부하에 걸려 통증이 오고 고장이 나는 거죠.” 그는 이제 ‘의사’가 아니다. 스스로가 전문적인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 첫 주제는 바로 ‘공포’다.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주된 정서인 공포를 분해하고 싶어요. 눈길을 끄는 광고는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안 사면 패배자가 된다는 협박을 해요. 그래서 갖지 못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경쟁에 뒤처지는 것은 못 견디게 만들어요.” 그는 약 기운으로 산다. 약을 먹고 고통이 잦아지면 활동을 한다. 그 시간에 사람도 만나고, 산책도 하고, 친구도 만난다. 약의 효과는 두 시간. 두 시간이 지나면 마치 전원이 꺼진 로봇처럼, 그는 눕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길 기다린다. 부작용이 있어 하루 세번만 약을 먹으니 6시간이 그에게는 살아 있는 시간이다. 그는 최근 10가지 버킷리스트(죽기 전 하고 싶은 일)를 만들었다. 그중 한가지가 눈길을 잡는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욕 실컷 하고 싶어요. 그동안 너무 고상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았어요. 욕쟁이 할머니처럼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향해 시원하게 욕 한번 퍼붓고 싶어요.”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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