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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성평등이 민주주의 완성…더 미룰 수 없는 외침이죠”

등록 2017-03-01 20:15수정 2017-03-01 21:35

[짬] 창립 30돌 여성단체연합 신·구 상임대표 백미순·김금옥씨
지난주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여성단체연합 백미순(왼쪽) 새 상임대표와 김금옥(오른쪽) 전 대표가 오는 4일 보신각에서 열리는 ‘2017 페미니스트 광장’ 기념티셔츠를 함께 선보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주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여성단체연합 백미순(왼쪽) 새 상임대표와 김금옥(오른쪽) 전 대표가 오는 4일 보신각에서 열리는 ‘2017 페미니스트 광장’ 기념티셔츠를 함께 선보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이 창립 30돌을 맞았다. 여성연합은 1987년 2월18일 ‘성평등·민주·복지·평화·통일’을 기치로 21개 여성단체가 힘을 모아 출발했다. ‘인권’이나 ‘젠더’라는 말조차 꺼내기 힘들었던 초기부터 지금까지 가족법 개정, 영유아보육법 개정,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여성인권 3법(성폭력방지법·가정폭력방지법·성매매방지법) 제정, 호주제 폐지 등 여성권익 관련 법·제도의 변화를 이끌었다.

지난 1월11일 여성연합은 제12대 새 공동대표 3명을 선출했다. 김영순 전 대구여성회 상임대표·최은순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과더불어 백미순(51) 전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이 상임대표의 중책을 맡았다. 김금옥(50) 전 상임대표는 만 13년 동안의 여성연합 활동을 마무리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에서 바톤을 주고받은 두 대표를 지난주 서울 여성미래센터에서 함께 만났다.

1987년 2월 21개 여성단체 힘모아
‘성평등·민주·복지·평화·통일’ 깃발로

6월항쟁세대 김씨 13년간 여연 활동
“촛불광장에서 ‘새로운 페미’ 성찰”
여성인권·성폭력 상담 전문가 백씨
“4일 보신각에서 페미니스트광장 열어”

두 사람은 50대 초반으로 비슷한 또래지만, 이력은 다르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김 전 대표는 88년 전북민주여성회(전북여성단체연합 전신) 창립 간사로 여성운동을 시작해 30년 동안 시민사회단체에서 잔뼈가 굵었다. 백 대표는 대학원에서 정치사상을 공부해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국가인권위원회를 거쳐 성폭력상담소 소장(2012~15)을 맡아 여성·인권운동을 아울렀다.

김 전 대표는 시민사회계의 ‘마당발’로 통했고, 논리적인 언변으로 자주 ‘마이크’를 잡았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 때부터 지금까지 모금통과 촛불을 들고 광장을 누벼왔다. 여성연합 활동을 “대통령 탄핵부터 시작해 대통령 탄핵으로 끝맺은 셈”이다. “하나도 아쉬움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힌 그는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1기 출신의 ‘6월항쟁 세대’다.

“출판계에서도 그렇지만 요즘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 열풍, 새로운 페미니스트 주체들에게 많이 배웠어요. 80년대는 성평등을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했던 시대였고, 저 또한 ‘그냥 참고 넘어가자, 안 바뀔 거니까’ 하고 생각한 적이 왜 없겠어요. 촛불광장에서 부당하다 생각하는 순간 바로 그 자리에서 저항하는 젊은 페미니스트를 보며 공사 영역에서 페미니스트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되더군요.”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는 시민단체 모임, 남북여성교류행사 등에서 그는 자주 ‘불편러’를 자처하며 성차별적 발언 등을 나무랐다. “가끔 당돌해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권위주의나 의전이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다”고 한다. 남성우월주의자들에게는 물론, ‘자칭 진보’라는 이들의 집중포화도 받았다. “일베꾼들에게는 ‘전라도 운동권 종북 페미’라는 비난, 촛불시위 때 디제이디오시(DJ DOC)가 부를 노래에 대한 찬반양론이 격화할 때는 ‘친박근혜 페미니스트’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성(젠더)평등’ 문제는 진보진영에서도 ‘나중에’라며 미뤄두는 게 다반사였다. 인권운동과 여성운동 양쪽으로 공부하고 활동해온 백 새 대표는 “인권적 논의 안에 젠더 관점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분리돼 있어서, 이를 돌파하는 것이 제 임무인 듯 싶다”라고 말했다. “‘민주적 정권교체’가 먼저고 성평등은 나중에, 성소수자·여성이주·여성장애인·여성빈곤·여성노동 문제는 나중으로 언제나 밀렸죠. 올해 3·8 세계여성의 날에는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는 구호를 채택했습니다.”

현재 여성연합은 28개로 늘어난 개별 여성단체의 활동을 ‘따로 또 같이’ 해야 하는 조직이다. 그래서 90년대 후반 이후 성평등과 법 제도 개선에 힘을 쏟을 때, ‘우리 안의 차이’가 화두로 떠올랐다. 호주제 폐지운동은 모두 뜻을 같이 했지만, 간통죄 폐지에서는 기혼여성이 처한 경제적 상황 때문에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있었다. 김 전 대표는 “끝없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며 더 강력히 함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좀 더 고민이 많아보였다. “‘87년’ 이후 여성운동은 어느 운동세력보다 더 진보적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해 왔다”고 강조한 그는 “초창기 여성연합이 던진 화두가 국가정책에 반영되면서 (저항적 페미니즘이 아닌) ‘국가 페미니즘’이라는 비판도 나왔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여성단체였다”고 했다. “제도화는 가장 진보적인 여성주의 활동가들, 페미니스트들이 벌인 맹렬한 운동의 성과이기도 했죠. 이제 그 기반 위에서 다시 진보성을 획득하는 것이 우리 과제가 되었습니다.”

재작년 1월 ‘페미니스트가 싫어서 이슬람국가(IS)로 떠난다’는 말을 남기고 터키에서 실종된 ‘김군’ 사건과 지난해 5월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이 벌어진 뒤 대중적으로 페미니즘 의제가 떠오른 점도 여성연합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요구를 어떻게 수렴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도 그래서다. 대선을 앞두고 낙태죄 폐지, 성별임금격차 해소, 차별금지법 제정 등도 이제 더 미뤄선 안 되는 일이다. 김 전 대표는 말했다. “‘나중’은 없으니까요. 사적이든 공적 영역이든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내는 말하기, 투쟁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성연합은 4일 오후 1시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2017 페미니스트 광장’ 행사를 연다. ‘페미 법률 상담소’ 등의 부스를 열고 거리행진을 예정하고 있다.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 본행사는 8일 오전 11시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한다. 조만간 ‘여성연합 30년사’를 정리하는 책을 내고 북콘서트도 열 계획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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