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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결혼은 시민권, 동성 연인에겐 선택권조차 없어”

등록 2021-05-13 05:00수정 2021-05-13 14:54

[한겨레 33살 프로젝트] ‘비정상 가족’은 없다
② 성소수자 유튜버 김철수·손장호 커플
김철수·손장호 커플이 집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있다. 두 사람은 “특별히 정해진 규칙은 없고, 서로 여유 날 때 조금씩 양보하며 살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철수·손장호 제공
김철수·손장호 커플이 집 옥상에서 빨래를 널고 있다. 두 사람은 “특별히 정해진 규칙은 없고, 서로 여유 날 때 조금씩 양보하며 살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철수·손장호 제공

다양한 가족은 이미 우리 곁에 있어 왔다. 혈연·혼인으로 이뤄진 ‘건강가정’, 부모·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의 잣대에서 벗어나 있었을 뿐이다. 자발적 비혼부로 어렵게 입양한 아이와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빠, 동성결혼 법제화를 기다리는 성소수자 커플, 1인가구 공동체를 꾸려가는 비혼여성들이 한 가족을 꾸렸다. 아직 법과 제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지만 평범한 삶을 꾸려가는 세 가족을 <한겨레>가 만났다.

4년4개월째 한 공간에서 같이 살고 있다. 매일 아침 한 침대에서 눈뜨고, 심지어 일도 함께 한다. 공동 작업실로 함께 출근한다. 둘 사이에 ‘내돈 네돈’은 없다. 함께 벌어 함께 쓴다. 노후에 귀농을 꿈꾸며 알뜰살뜰 돈을 모은다.

여느 결혼한 커플과 다르지 않지만, 두 사람은 법적으로 남남이다. 성소수자 유튜버 김철수(32), 손장호(30) 커플 얘기다. 두 사람은 2016년 12월부터 서울 은평구 15평 주택에서 고양이 네마리와 같이 살고 있다. ‘대명절 외톨이회’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한눈에 반해 연인이 됐고, 한시도 떨어지고 싶지 않아 살림을 합쳤다. ‘대명절 외톨이회’는 명절이면 더 심한 소외감을 느끼는 성소수자를 위로하고 또 연결하기 위해 김철수씨가 만든 모임이다. 가족으로부터 받은 소외를 해소하려다 진짜 가족을 찾은 셈이다.

“선택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기존 가족과 달리, 장호는 내가 스스로 만든 가족이잖아요. 기존 가족 속에서 안정감과 억압을 동시에 느꼈다면, 장호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 곁에 있어주는 진짜 내 편 같아요.”(김철수)

“부모님이 기사를 보면 좀 속상하실 수도 있지만, 철수는 진짜 가족 같아요. 하하. 철수는 그 누구보다 의지가 되고, 철수 옆에서 저는 더 자유로워요.”(손장호)

여느 가정처럼 김철수·손장호 커플도 냉장고 문에 함께 다녀왔던 여행 사진을 붙여뒀다. 김철수씨는 “집주인이 불시에 방문해 벽에 붙여놓은 커플 사진을 보고 편견을 가질까 봐 걱정될 때가 있다”고 했다. 김철수·손장호 제공
여느 가정처럼 김철수·손장호 커플도 냉장고 문에 함께 다녀왔던 여행 사진을 붙여뒀다. 김철수씨는 “집주인이 불시에 방문해 벽에 붙여놓은 커플 사진을 보고 편견을 가질까 봐 걱정될 때가 있다”고 했다. 김철수·손장호 제공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끼는 깊은 결속감은 법과 제도 앞에서는 무력하다.

“얼마 전에 작업실을 구하는데 돈이 모자랐어요. 신혼부부 전세자금 대출을 저희도 받을 수 있었다면 더 나은 여건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죠. 소소하게는 통신사 가족할인 같은 것도 받을 수 없고요. 아직 둘 다 젊고 건강하지만, 더 나이들어 둘 중에 누군가 아프게 되면 우리는 서로의 수술 동의서에 사인도 할 수 없어요.”(손장호)

“집 냉장고와 벽에 장호와 찍은 사진이 여기저기 붙어 있는데, 집주인이 올 때마다 눈치가 보여요. 혹시 우리가 동성 커플인 걸 알고 집세를 터무니없게 올리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고요. 법이, 사회가 동성 커플을 가족으로 공인해준다면, 최소한 이런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김철수)

비혼이 하나의 트렌드인 요즘이지만, 두 사람은 강력하게 결혼을 하고 싶어 한다. ‘법적 가족이 될 수 있음’, 그 자체를 일종의 시민권으로 보기 때문이다. 김씨는 “결혼에 대한 호불호는 차후 문제다. 결혼할 수 있는 건 하나의 권리다. 지금은 우리에게 그 선택권 자체가 없는 상태”라고 했다. 그는 “게이 커플의 일상을 담은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어서 ‘(정신)병원 가봐라’ 등 입에 담지 못할 악성 댓글이 많은데, 법과 제도로 동성 커플을 가족으로 인정해준다면 든든한 방패가 생기는 기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입양도 꿈꾼다. “죽을 때까지 내가 아이를 키우는 일은 없겠지라고 생각하면 공허해요. 자녀를 기르는 일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큰 기쁨이자 삶의 가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언젠가는 입양을 하고 싶은데, 이게 일단 우리 둘이 법적으로 부부로 인정받아야 가능해요. 그래서 결혼이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출발점이에요.”(김철수)

서로를 평생의 동반자로 여기고 있지만, 병원에 가면 여전히 보호자가 아닌 ‘친구분’으로 불리는 이들. 두 사람이 생각하는 가족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내 편”(김철수) “일상을 공유하는 사람”(손장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티브이나 동화에서 대부분의 가족은 엄마, 아빠, 자녀들로 그려지지만, 실제로는 게이 커플, 결혼하지 않은 커플도 주변에 많거든요. 법이 먼저 인정해주면, 이들의 존재도 보이게 되지 않을까요?”(손장호)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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