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는 반려견 호두의 똥을 치우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거실로 나가면 배변 판 주위(배변 판 위가 절대 아니다. ㅠㅠ)에 똥이 놓여 있다. 꼭 세 덩어리씩 싸는데, 가끔 석 삼(三)이나 작을 소(小) 모양을 만들어서 혹시 글을 아는 개가 아닌가 하는 실없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호두의 배변은 규칙적이다. 하루 서너 번을 새벽, 오후, 저녁 일정한 시간에 배출한다. 모양도 프랑크 소시지 같은 이상적인 형태다. 소형견의 몸에서 나왔다고 보기엔 그 굵기가 인체, 아니 견체의 신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배변 문제로 고민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배변 라이프’다.
여기에 ‘플러스알파’로 산책하러 나가면 꼭 싼다. 바깥 공기를 맡으면 변의가 느껴지는 모양이다. 개를 좋아하는 만큼, 개를 싫어하는 사람도 존중하자는 신념으로 페티켓은 철저히 지킨다. 항상 배변 봉투를 가지고 다니면서 배변의 흔적은 깨끗이 처리한다.
지난 토요일이었다. 오랜만에 호두와 낮 산책에 나섰다. 마침 호두가 프랑크 소시지를 막 배출한 터라 가벼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게 화근이었다. 골목길을 벗어나 큰길로 접어드는데 배변 봉투가 없는 걸 깨달았다. 깜빡하고 배변 봉투를 챙기지 못한 것. ‘집으로 돌아갈까’고민하다가, ‘좀 전에 쌌는데, 설마’란 생각으로 길을 재촉했다.
개와 다니다 보면, 행인들의 눈길을 받을 때가 있다. 물론 상대 쪽이 개를 좋아하는 경우다. 같은 반려인이 다가와 “이름이 뭐예요?”, “몇살이에요?” 등을 묻기도 한다. 낯선 이와 대화하는 것을 꺼리는 한국 문화에서 보기 드문 풍경이다. 이날 주말을 맞아 서촌엔 놀러 온 사람이 많았다. “아유, 예뻐라”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 괜히 어깨가 으쓱. ‘그래, 호두가 좀 예쁘긴 해.’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가 예쁘답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책 코스 중간에 카페가 있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길가 쪽 테라스에 자리를 잡는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호두는 손님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다. 이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20대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지나가는 호두를 보고 “어머, 예쁘다”며 반색했다.
아…. 순간, 일이 터졌다. 갑자기 호두가 가는 길을 멈추더니 몸을 낮추고 제자리를 돌기 시작했다. 똥을 싼다는 신호다. 호두를 보고 예쁘다고 했던 그분들은 갑자기 입을 닫았다. 왜 하필 여기서! 후회는 소용없었다. 호두는 자신의 장이 얼마나 건강한지 뽐내기라도 하듯 역대급으로 굵은 소시지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아니, 거의 순대 수준이었다. 그 광경을 보던 손님 한 명이 “와…”라며 나지막한 탄성을 내질렀다.
더 큰일은 내게 배변 봉투가 없었다는 것. 결국 그분들에게 “티슈 좀…”이라며 민망한 손을 내밀었다. 똥을 치우는데 얼마나 양이 많은지 추가로 티슈를 요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이날 깨달은 교훈이 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행동을 예측하지 말자는 것. 이 사람은 이럴 거야 또는 이러지 않을 거야라고 확신하는 순간 뒤통수를 맞듯, 개도 별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배변봉투는 무조건 챙길 것. 아무튼 호두야, 건강해서 다행이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