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바람처럼 불어오고, 중대 발표는 벼락처럼 내리치는 법. 지난 연말 아들(6)이 청천벽력 같은 선언을 하고야 말았다. 봄에 유치원 같은 반 친구와 결혼하고 싶단 얘길 꺼냈고, 한여름엔 프러포즈 편지(2020년 8월27일치 ESC ‘6살의 러브레터’ 참고)를 써서 건넬 시점을 재더니, 연말 무렵 그 결실을 맺었다는 것이었다. 다음은 중대 발표를 시작한 아이와 아내(아이의 엄마)의 대화.
아이 엄마, 나 그 편지 안 줘도 되게 됐어~
아내 응? 무슨 편지?
아이 그 ○○이 편지(○○이에게 결혼하자고 제안하는 편지) 말이야~
아내 아…. (몇달 지나서 까맣게 잊고 있었음) 그거? 왜???
아이 ○○이가 나랑 결혼한대~
아내 (당황하며) 뭐??? 갑자기 왜?????
아이 (우쭐한 표정) 으응 내가 그냥 물어봤는데, 나랑 결혼하겠다고 하더라고.
이쯤부터 표정이 굳은 아내는 아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내 (정색하며) 너 아직 여섯살 밖에 안 됐는데 앞으로 더 마음에 든 애가 나타나면 어떻게 할 거야?
아이 (태연하게) 으응 그건 그럴 리가 없어~~
아내 왜?
아이 (더 태연하게) 그냥. 그럴 리가 없으니까.
반쯤 포기한 아내 좋아. 너 그럼…. ○○이랑 결혼해도 엄마 보러 자주 올 거지?
한술 더 뜨는 아이 아니~~ ○○이랑만 있어도 좋은데 뭐~ 엄마, 이 집을 나한테 넘기고 엄마는 대전 할머니집(시가)에 가서 사는 게 어때??
좌절한 아내 …….
벌써 신혼살림을 꾸릴 궁리를 하는 6살 아이. ‘너도 다 계획이 있구나~~’ 하지만 아이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 ‘얘야 우리 집 전세야…. ^^’
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