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서 2달러에 산 <더 김시스터즈: 데어 퍼스트 앨범>(1964)은 ‘해외 원정 짠내 수집’ 최고 행운의 하나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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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말이 있다. 우연히 운 좋은 기회에 하려던 일을 해치우거나 한가지 일로 두가지 결과를 얻는다는 의미가 담긴 이 속담은 짠내 수집에도 그대로 통용할 수 있다. 수집 가치가 있는 물건을 구하기 위해선 천리 길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매번 먼 거리를 이동할 엄두를 내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비용과 시간 등을 고려할 때 외국에서 수집품을 찾는 건 더욱 힘겹다. 온라인을 통한 해외 직구 등 길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실물을 보지 않고 판매자의 일방적 설명에 의존해야 하니 실제 물건을 받았을 때 낭패를 보는 일도 허다하다는 것이다. 남들도 수집하는 좋은 물건은 직구를 해도 가격이 만만찮다. 횡재는 고사하고, 맘에 안 든다고 쉽게 무를 수도 없어 ‘글로벌 호갱’이 되기에 십상이다.
이럴 때 떡 본 김에 제사 지내고, 임도 보고 뽕도 따는 수집 활동이 제격이다. 한국에선 이른바 팝송, 샹송 엘피(LP)는 대개 라이선스반으로 발매한 탓에 아주 잘 찍어낸 몇몇을 제외하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본고장에서 생산한 원반에 견줘 음질과 재킷 인쇄의 질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다. 당연히 국내에선 라이선스 엘피에 견줘 원반의 거래 가격이 훨씬 높게 형성돼 있다.
■ 하와이 음반상도 감탄, 60여장 득템
짠내 수집이 일상인 나는 두가지 방법을 활용했다. 친인척 등 지인들이 외국에 나갈 때 여행 경비를 일부 보태 인심을 얻고 엘피 수집을 ‘대행’시키거나 직접 기내식을 먹을 기회가 있을 땐 현지 중고 엘피점을 찾아가 대량 구매로 항공료를 보전하는 것이다.
짠내 수집 초기엔 영국에 유학하는 조카의 도움을 받았다. 방학을 이용해 유럽 다른 지역을 여행한다고 할 때 “이모부가 용돈을 좀 줄 테니, 여행 다니다 혹시 이런 엘피가 있으면 좀 사다 줘”라며 목록을 적어준 것이다. 독일, 러시아 클래식 거장들의 연주 실황 음반은 물론 스웨덴 그룹 아바와 록시트의 스웨덴 발매 음반, 영국 출신 아델과 데이비드 보위의 영국 발매 음반 등을 이렇게 구했다. 국내에서 거래되는 이런 음반의 가격을 고려해 여행 경비를 보태면 받는 쪽은 적당히 착한 가격에 정성스럽게 엘피를 사 오고 남는 돈은 경비에 보태 쓰니, 서로 기분 좋은 일이다.
직접 해외여행을 할 기회를 활용하면 만족도는 훨씬 높다. 희귀 음반을 탐색하는 즐거움, 진귀한 엘피를 얻었을 때 횡재의 기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2018년 6월 딸과 하와이를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와이키키 해변을 거니는 기쁨보다 엘피 수집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기대가 더 컸다. 미국판 아름다운 가게인 학부모회 숍(Parent-Teacher Association shop)이나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리스토어(Re-store) 등에서 1달러 안팎의 엘피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팝 명반도 국내에 견줘 아주 저렴하게 수집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여행에 앞서 하와이에 있는 중고 엘피점을 모두 검색했다. ‘아이디어스 뮤직 앤드 북’이라는 엘피점이 수집가들 사이에도 이름난 곳이라는 걸 알아냈다. 그리고 롤링 스톤지 선정 500대 명반, 배철수의 음악캠프 20주년을 맞아 디제이 배철수가 뽑은 ‘100대 명반’ 목록을 인쇄해 우연히 닥칠지 모를 횡재의 기회에 대비했다.
스웨덴 혼성그룹 아바, 록시트의 스웨덴 발매 음반, 영국 출신 아델과 데이비드 보위의 영국 발매 음반 등은 외국에 나간 ‘지인 찬스’로 구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하와이 여행 둘째 날 버스를 타고 무작정 찾아갔다. 중고 엘피와 마블 만화책 등 빈티지 수집가들이 탐낼 만한 물건이 넘쳐났다. 닷새의 여행 기간 동안 사흘을 이곳에 들러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9달러),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타게 된 블로인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가 수록된 <밥 딜런 그레이티스트 히트>(7달러 9센트), 가장 위대한 여성 보컬리스트로 꼽히는 재니스 조플린의 <펄>(PEARL, 7달러), 신화적인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이 이끌던 ‘데릭 앤드 더 도미노스’가 1970년 발매한 프로젝트 음반 ‘라일라 앤드 아더 어소티드 러브 송스’(LAYLA and other assorted love songs, 11달러) 등 팝 명반 60여장을 착한 가격에 거의 줍줍했다.
배철수의 100대 명반 목록을 길잡이 삼아 무작정 모은 것인데, 이곳에서 40년 이상 엘피를 판매해온 할아버지 놈(Norm)은 “팝에 상당히 정통한 것 같다. 미국인들도 이렇게 명반만 콕 집어내지는 못한다”고 감탄을 연발했다. 당시 머릿속에 뭉게구름이 피어 다니는 듯한 모습을 형상화한 재킷 그림이 아주 마음에 들어 11달러에 산 ‘데릭 앤드 더 도미노스’의 1970년 프로젝트 음반은 이후 팝 애호가들의 수요가 폭발해 세계적 음반사 유니버설 뮤직이 2020년 다시 제작해 재출시할 정도였으니, 중고 엘피 판매에 청춘을 바친 이가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밟은 나의 ‘엘피 선구안’을 높이 살 만하다는 자기만족에 빠져들기도 한다.
■ 중국 엘피 같은 김시스터즈 음반
하와이 짠내 수집의 최고 행운은 김시스터즈의 미국 진출 음반 <더 김시스터즈: 데어 퍼스트 앨범>을 단돈 2달러에 사들인 것이다. 1930~40년대 ‘다방의 푸른 꿈’ ‘목포의 눈물’ 등으로 최고 인기를 구가했던 이난영은 자신의 딸 김애자·숙자와 조카 이민자로 3인조 걸그룹 김시스터즈를 결성해 미군 부대 클럽 무대에 세웠다. 거의 모든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룬 이들의 연주와 노래 실력은 휴가를 간 미군들의 입소문을 탔고, 미국 쇼 흥행업자가 소문을 확인하러 한국에 들렀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허락을 받아 이들을 미국에 진출시켰다. 지금은 블랙핑크 등 한국 걸그룹이 외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해외 진출 걸그룹 원조는 1959년 미국에 진출한 김시스터즈다. 이들은 당시 미국 최고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에드 설리번 쇼>에 출연하고 유명 잡지 <라이프>에 화보가 실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1964년 7월 모뉴먼트 레코드에서 첫 독집 음반을 냈는데 내가 그걸 발견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엘피 수집가들 사이에 희귀 아이템인데 국내 수집가들도 심심찮게 들르는 하와이 중고 엘피점에 남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한국 음반으로 분류했다면 이미 다른 주인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식 옷을 입은 김시스터즈의 사진과 한자 문양으로 앨범 이름을 디자인한 재킷 때문에 중국 음반으로 분류해놓았는데, 혹시나 하고 그곳까지 뒤진 내게 행운이 온 것이다. 하와이에서 중고 엘피를 한 무더기 사 온 나에게 지인들은 “항공료는 충분히 건졌겠는데?”라고 했다. 이렇게 수집한 음반을 다시 판매한 적이 없지만 모두 국내에서 후한 가격에 거래되는 걸 고려하면 적당한 산수로도 그런 계산이 나온다.
지난 3년 코로나19 때문에 외국에 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 이제 다시 해외여행의 문이 활짝 열렸으니, 그 기회를 적극 활용해 짠내 수집 대열에 동참하시길….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