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나타나고 있다. 사망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폭염은 사람의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를 노리는 대상포진도 7~8월 한여름에 많이 발생한다. 대상포진은 수두 바이러스가 몸속 신경절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나타난다. 피부에 띠 모양의 물집이 생기고 극심한 통증을 수반한다.
대상포진 환자는 평균 기온의 증가와 함께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통해 2018~2022년 월별 대상포진 환자 수를 살펴보면, 8월 한 달 환자 수가 8만9천명으로 가장 많고, 7월도 8만8천명에 이른다. ‘무더위에 지쳐 기력이 쇠약해진다’는 말을 흔히 쓰는데, 무더위에 면역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대상포진 월별 환자 수로도 증명되는 셈이다. 5·6·9월에도 8만명대를 기록한 대상포진 환자는 기온이 낮은 겨울철에는 매달 7만명대로 떨어졌다.
우리나라 대상포진 환자 수는 2019년 73만7천명을 기록하며 최고점을 기록했고 2021년과 2022년엔 증가세가 꺾였다. 다른 감염병처럼 코로나19 유행에 따라 일시적으로 감소세를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가 극복되면서 대상포진 감염자 수도 다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대상포진에 걸리는 나잇대를 살펴보면 환자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50대 이상 장·노년층이다. 50대 이상에서 대상포진 환자 수가 많은 이유 역시 면역력과의 관련성 때문이다. 특히 암이나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에 걸린 장·노년은 청년층에 견줘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진다. 특히 암 환자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대상포진이 나타나기도 한다. 젊은층 역시 스트레스, 야근이나 과로, 흡연이나 과음 등으로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대상포진에 걸릴 수 있다.
질병 이름처럼 띠 모양으로 물집(수포)이 생기는 것이 대상포진의 특징적 증상이다. 피부에 물집이 생기기 전후로 타는 듯한 심한 통증과 감각 이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온몸에 미열이 나고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물집 모양은 수두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 띠 모양의 물집은 전형적인 모습이어서 의사들은 특별한 검사 없이 물집이 생긴 모양으로 대상포진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피부에 생긴 물집은 처음에는 맑았다가 점차 고름이 차는 것처럼 탁해진다. 내버려 두면 대부분 10~14일 뒤에는 딱지가 생기면서 물집은 낫는다. 하지만 물집이 옷이나 다른 물체와 접촉하면서 터지면 궤양으로 번지거나 세균성 감염으로 악화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물집에 손을 대지 말아야 하고, 물집이 터지면서 나오는 내용물이 다른 사람에게 닿으면 대상포진에 감염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 특히 대상포진에 걸렸을 경우에는 영유아나 임신부, 면역저하자와는 접촉하지 말아야 한다.
대상포진은 물집이 딱지로 변하면서 서서히 낫게 된다. 그러나 환자 10명 중 3명은 물집이 생겼던 부위에 심한 통증을 느낀다. 이를 ‘대상포진성 통증’이라고 하는데, 특히 노령층일수록 통증이 심할 가능성이 크다. 대상포진성 통증은 수포가 나타나지 않을 때도 생길 수 있는데 이때는 다른 원인에 의한 통증과 감별하기가 힘들 수 있다. 대체로 초기부터 진통제와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하면 개선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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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바이러스가 신경절에 숨어 있다가 활성화돼 생기는 대상포진은 신경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생길 수 있다. 특히 얼굴에 생기는 대상포진은 더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얼굴에는 여러 감각기관이 있고 대상포진이 얼굴 안쪽으로 침투할 경우 뇌를 둘러싸고 있는 뇌수막에도 염증이 생길 수 있다. 눈 주변에 생기면 각막이나 망막, 홍채 등을 침범할 수 있는데 이 경우 후유증으로 시력이 손상될 수 있다. 귀를 침범한 경우에도 난청이나 이명이 남을 수 있다. 장기이식 등으로 면역 억제제를 쓰거나 암 치료를 위해 항암제 등을 써서 면역력이 매우 낮은 경우에 대상포진에 걸리면, 뇌수막염이나 뇌염, 간염 등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할 수 있다.
이미 우리 몸 속 신경에 잠복해 있는 수두 바이러스가 대상포진의 명확한 원인으로 밝혀져 있지만, 이를 제거하기는 쉽지 않다. 항바이러스제를 쓴다고 해도 효과적이지 않다. 결국 대상포진을 예방해야 하며 핵심은 면역력 유지다. 피해야 할 것으로 대표적으로 꼽히는 것이 스트레스와 과로다. 또 폭염으로 인한 수면 부족이나 피로 누적도 마찬가지이다. 한여름 더위에 야외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거나 햇빛에 노출되면서 운동을 하는 것도 피해야 한다. 냉방기구의 적절한 사용으로 수면 환경의 질을 높여야 한다. 혹서기 야외 운동도 피하고 실내운동이나 아침·저녁 시간 운동으로 몸의 면역력을 꾸준히 유지해야 한다. 과일이나 채소에는 비타민 등 항산화 물질이 많이 들어 있어 이를 잘 챙겨 먹는 것도 추천된다.
다행히 대상포진의 발병 위험을 낮추거나 걸려도 대상포진성 통증이 남을 가능성을 낮추는 예방백신이 나와 있다. 50살 이상의 장노년층과 질병 치료로 면역이 떨어져 있는 젊은층에도 백신 접종이 권고된다. 접종의 부작용으로는 접종 부위의 통증이나 가려움증, 홍반, 두통이 나타날 수 있다. 대상포진 예방접종은 비급여 항목으로 15만원 안팎의 비용이 들고 병원마다 차이가 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노년층을 대상으로 무료 접종을 하거나 접종비를 지원하는 곳이 있으므로 이를 확인해 볼 필요도 있다.
김양중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경북의 한 시골마을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했다. <한겨레> 의료전문기자로 재직하면서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위한 기사를 썼고, 지금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의료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업무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