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인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 <브레이킹던 파트2>의 한 장면. 서밋 엔터네인먼트 제공
싸움 얘기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로지 1층에 묵었었다. 늑대 사진 찍으러 다니다, 곰 사진 몇장 건져 돌아온 날 밤 10시. 밤은 깊어 고요한데 할 일은 많아, 졸며 사진을 정리하고 있었더랬다.
문득, 창밖에서 들리는 싸우는 소리.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강하게 추궁하자, 여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대답했다. 남자가 점점 거칠게 몰아붙이면서, 여자 목소리도 비명처럼 높아갔다. 무슨 사연으로 이 밤에 남의 방 옆에 와서 대판 싸우나. “퍽큐!” 남자가 욕을 뱉으면서 싸움은 격해졌다. 심지어 철썩철썩철썩 때리는 소리도 들리고, 여자는 “신이시여!” 하며 흐느꼈다. 심한 싸움이었고, 둘의 기세는 막상막하였다. 마주 보면서도 싸우고 돌아서서도 싸웠다. 아, 젠장. 도무지 말릴 엄두가 안 나는 이 싸움을 어쩌란 말인가.
싸움이 끝난 건, 다른 방 동료가 돼지코를 빌리러 왔을 때다. 쉿! 상황 설명을 했지만, 그는 창밖을 내다보며 어둠 속을 살폈다. 소리는 딱 그쳤다. “아무도 안 보이는데?” 이때 밖에서 들려온 늑대 소리. “와우우우~.” 싸운 게 실은, 늑대였단 말인가. 졸다가 늑대 싸우는 꿈을 꿨나.
한국에 돌아와, 이 신기한 얘길 하니 누군가 말했다. “이런 저질!” 에휴, 사랑 나누는 데 저질·고질이 따로 있나. 뒹굴고 사랑하면서 한세상 굴러가는 것을.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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