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의 계절이 돌아왔다. 티브이엔(tvN)의 <싸우자 귀신아>를 필두로 각종 방송에서 폐가를 찾아 나선다. 할머니 귀신도 단골 출연자다. 나는 할머니 귀신이 튀어나오면 우습게도 군침이 고인다. 10여년 전에 겪은 일 때문이다.
새벽 4시. 시커먼 어둠이 뒤덮인 제주도 성산일출봉. 삼각대를 포함해 30㎏이 넘는 촬영 장비를 메고 홀로 올랐다. 굽이굽이 바위 사이를 돌 때마다 악령의 주술 같은 소리가 들렸다. 저승사자를 닮은 구름은 달도 삼켰다. ‘미쳤지! 해돋이를 찍겠다고 이게 뭔 짓이람!’
겨우 정상에 올라 한숨 돌리는데 뭔가 다가왔다. ‘으악!’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사람 하나쯤은 꽁꽁 싸매고도 남을 봉지가 달려들었다. 양팔을 휘저어 걷어내자 한 사람이 얼굴을 디밀었다. ‘악!’ 얼굴만 공중에 뜬 할머니 귀신이었다. 쪼글쪼글한 피부, 시퍼런 빛이 뿜어 나오는 퀭한 눈, 삐죽삐죽 튀어나온 백발! 귀신이 말을 건네 왔다. “김밥 한 줄에 천원이야! 부지런하기도 하지, 벌써 올라왔어!” 관광객을 상대로 김밥과 달걀을 파는 광주리 할머니였다. 내게 달려들며 숨이 멎을 듯한 공포를 불러온 봉지는, 바람에 날려온 광주리 덮는 비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할머니의 김밥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맛있었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