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그렇게 많은 여성들에 둘러싸여본 것도 오랜만이다. 그 골목 그 밤을 잊을 수 없다. 여인숙 골목 사진 찍으러 찾아간, 충남의 한 도시 역앞 뒷골목. 여인숙 20여곳이 들어찬 곳이었다. 불볕더위가 절정에 이른 한낮. 부채질하는 할머니 몇 분 보이고, 가끔 아주머니들이 오갈 뿐 골목은 나른했다. 야경이 좋겠다 싶어 밤에 다시 찾아갔을 때 일이 터졌다.
색색의 간판들로 불야성을 이룬 골목은 활기차 보였다. 여인숙 문 앞마다 할머니들이 앉았고, 행인도 많았다. 조심스레 셔터를 누르며 걸어가는데, 앙칼진 소리가 들려왔다. “야, 왜 찍어!” 방금 지나간 ‘행인 1’의 소리였다. 다가오던 ‘행인 2’가 가세했다. “우리 찍었어?” 여인숙 문을 박차고 나온 ‘주인1’이 달려왔다. “그 새끼, 또 왔어?” 행인 3, 4가 다가오고, 주인 2, 3, 4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공포감이 밀려왔다. “저, 그냥 간판 찍었는데요.” “카메라 내놔! 찍은 거 돌려봐!” 순식간에 40~60대 여성 7~8명에 둘러싸여, 찍은 걸 보여줘야 했다. 아, 일부 사진에 행인 몇이 보였다. 행인·주인들은 카메라를 빼앗을 듯 달려들었다. “씨발, 당장 싹 지워!” “이게 어디 와서!” 낮에 찍은 것 몇장 남기고 싹 지운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진땀 흘리며 골목을 나서는데 한 할머니가 다가와 속삭였다. “놀구 가아. 그럼 내 다 찍게 해 줄겨.” 난, 과연, 어떻게 사진을 찍었을까.
이병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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