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방 소리’는 여인숙이나, 낡은 여관이나 다를 바 없나 봅니다.
‘사랑이 사람 잡네’를 읽다 보니 16년 전 강릉에서 겪은 일이 떠오르네요.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평화로운 어느 가을날이었습니다. 훌쩍,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계획에 없던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설악산을 오르고, 비 내리는 밤 하조대 모래사장에 앉아 ‘멍 때리고’, 낙산사 해수관세음보살상 앞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다 강릉 경포대까지 가게 됐습니다. 경포호 산책로를 걸어 경포대 해수욕장까지 실컷 구경하고 났더니 어느새 다시 어둠이 내리더군요. 잘 곳을 마련해야 할 때가 온 겁니다. 깨끗해 보이는 모텔의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몇 명이에요?” “혼잔데요.” “한 명은 안 받아요.” 그다음에 들어간 몇 군데 모텔과 여관에서도 이런 대화가 반복됐습니다.
어쩔 수 없이 ‘○○여관’에 들어갔습니다. 처음부터 눈에 띄었지만, 단층의 매우 낡은 곳이어서 그냥 지나친 곳이었습니다. 50대 후반쯤 됐을까, 제 행색을 위아래로 훑어본 주인 아주머니는 “죽으러 온 거 아니죠?” 하더군요. 여자 혼자 여행을 하면 청승맞다고 보거나 사연이 있어서라고 생각하던 때이니, 그저 건네받은 방 열쇠에 고마움만 표하고 말았습니다.
부실한 잠금장치와 청결하지 않은 침구 상태 탓인지 계속 뒤척이다 간신히 잠이 들려는 찰나, “두 명이요!” 하는 술 취한 중년 남자의 커다란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새벽 3시였습니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요”라는 여자 동행의 목소리도 불콰했습니다. 그들이 들어간 곳은 하필이면 제 옆방. 쿵쾅대는 소음을 억지로 의식 저편으로 밀어내며 잠을 청하는데 “흐어억!”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벽도 쿵쿵 울리더군요. 그들이 격렬하게 밤을 불태우는 소리가 옆방의 제게 고스란히 생중계된 겁니다. 다음날 퇴실할 때야 알았지만, 심지어 두 방의 침대는 벽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붙어 있더군요.
10여년이 지난 뒤 다시 경포대에 갔을 때, 그 여관은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주변은 대형 식당과 편의점 등으로 바뀌었고요. 설령 그 여관이 그 자리에 있대도 다시 묵을 일은 없겠지만, 그때의 저처럼 ‘거절당한 손님’을 맞아주는 곳 하나쯤은 남아 있어도 좋은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쩐지 조금, 쓸쓸했습니다.
조혜정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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