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거방송, 재밌게 봤어요’, ‘매우 떨렸어요.’
‘다른 나라’를 만들, 새 시대의 대통령으로 문재인이 당선되던 날, 배우 윤여정과 나눈 문자메시지입니다. 윤여정은 5월9일, <제이티비시>(JTBC)의 선거방송에 출연했습니다.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수없이 겪은 일흔의 배우가 20대처럼 떨렸다고 하니 살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곧 제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지요. ‘역시 윤여정이다’ 싶었습니다.
떨림은 청춘의 통과의례 같은 겁니다. 엄마의 뱃속을 탈출해 겪는 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문패를 달고 제공하는 감정입니다. 첫사랑과의 첫날밤이 떨리고, 첫 직장의 첫 번째 문턱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합니다. 윤여정은 청춘의 떨림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찍이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다른 어른’인 거죠. 이런 이유 때문에 이 남다른 어른을 ‘다른 나라’가 활짝 열리는 5월, ESC에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더구나 그가 주인으로 장사에 몰입해 고군분투하는 <티브이엔>(tvN)의 <윤식당>은 닐슨코리아 기준으로 매회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나영석표 예능’이 다소 불편했던 저도 <윤식당>만은 챙겨 봅니다. 누구나 한번쯤 꿈꿨던 쉼표 같은 인생이 인도네시아 작은 섬 ‘길리 트라왕안’의 ‘윤스 키친’에 있어서가 아닙니다. 세포 하나하나 콕콕 찍어 깨우는 천상의 햇볕과 한지의 먹물 같아 금방이라도 피부에 스며들 것 같은 푸른 바닷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윤여정이 가진 거침없는 낭만과 몰입하는 ‘노오력’ 때문입니다. 카메라 따위는 안중에 없이 “미모는 포기해야겠어, 잘해서 시집이나 가볼까 했는데”라는 말을 내뱉거나 불고기를 뜨거운 불판 앞에서 지지고 볶고 또 굽는 그의 노동에서 재미를 느낍니다.
지난달 25일, 인터뷰 현장에서도 그가 던진 막힘없는 ‘농담 같은 진담’이 큰 웃음을 줬습니다. ‘윤여정’을 통해 새 시대 ‘다른 어른’에 대해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박미향 ESC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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