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분야가 마찬가지지만, 음식업계도 한 단계 그 수준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이가 있습니다. 페란 아드리아가 그런 이죠. 그는 ‘분자요리’(조리와 과학을 접목)를 전세계 요리사들 주방에 퍼뜨렸고, 요리사를 미묘한 맛의 창조자로 인식시켰습니다. 오귀스트 에스코피에(1846~1935)가 20세기 서양요리의 체계를 잡았다면 21세기 식탁의 발전은 그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올리브즙을 짜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뚜껑을 열면 밀림의 향이 피어오르는 그의 요리를 그저 가진 자들의 혀의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라 폄하하는 이도 있지만, 그는 여전히 ‘혁신의 아이콘’이라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스페인 마드리드 출장길에 우연히 그를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헐렁한 옷차림에 신호등을 기다리는 그의 옆모습에서 6개월 숙성시킨 하몬 이베리코의 소금 향이 났습니다. 더구나 그의 레스토랑 ‘엘 불리’의 실험을 다룬 다큐멘터리 <엘 불리: 요리는 진행 중>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죠. 묻고 싶은 게 있었습니다. “6개월 전에도 예약이 어려울 정도인데 왜 문을 닫고 재단을 만들었는지요?” 지금 그는 음식과학연구소를 차려 지구의 거의 모든 맛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간장, 된장도 그 목록에 들어가 있습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물음표를 던지려는데 한 모금 빤 시가의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ESC는 10돌 기념호를 내고 잠시 문을 닫습니다. 새 시즌을 위한 밑작업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맞습니다. 그를 끌어들인 건 다소 억지스럽습니다. 수십 킬로 떨어져 있는, 낯선 페란 아드리아를 등장시킨 것은 ESC의 한 달여간의 공백이 그의 혁신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더 재밌고, 더 황당한 콘텐츠로 사랑하는 독자님들의 식탁에 웃음을 주기 위해서 밤새 혁신을 고민하겠습니다. 10돌을 지나 20돌이 되는 그날까지 독자님들의 응원에 기대어 달리고 달리겠습니다.
박미향 ESC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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