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부터 푸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호두’라 부른다. 집 근처 호두과자 가게 앞을 지나다가 지은 이름이다.
개를 키우면서 여러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그중 하나가 정기적인 산책이다. 운동을 시키기 위한 것도 있지만, 다른 개들과 만나면서 사회성을 키워주려는 것이다.
개들이 서로 다가가면 개 주인은 “안 물어요”, “착해요”라고 말을 한다. ‘나의 개는 당신의 개를 해치지 않는다’는 일종의 ‘사인’이다. 종종 개가 개를 물어 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서로 ‘간’을 보는 거다.
지난 주말, 산책하던 호두가 꽤 큰 개와 마주쳤다. 아뿔싸, 상대 견주가 백발의 외국인이었다. 영어로 “착해요”라고 해야 하는데, 순간 말문이 막히고, 머리는 멍해졌다. 그 쉬운 단어도 떠오르지 않다니.
“어…어”, 그저 대략난감했다. 10년 넘게 영어 공부를 했는데 이런 단순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없는 나는 한없이 작아졌고, 한국 영어 교육 현실에 대한 만감이 교차했다. 그 순간, 백발의 외국인이 중저음으로 말했다.
“우리 개, 순해요.”
아! 순하다니. ‘착해요’, ‘안 물어요’도 아니고, 토속적이고 정감이 어린 ‘순하다’는 표현을 외국인이 쓰다니. 호두를 바라보는 내 얼굴은 화끈거렸다.
집에와 책장을 보니, 앞쪽 3분의 1만 새까만 손때가 묻은 <성문종합영어>가 보였다. 바로 그 책을 내다 버렸다.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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