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강아지 놀이방.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지난해 초여름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주 서귀포의 한 바닷가였습니다. 스쿠버다이빙을 한 차례 마치고 바닷가로 걸어 나오는데, 거짓말 좀 보태면 황소만한 개 한 마리가 바다 쪽으로 뛰어오지 뭡니까. 어찌나 놀랐는지 소리도 못 지르고 그 자리에 멈춰 덜덜 떨기만 했습니다. 그때 들려오는 목소리. “하하핫, 우리 개 순해요. 안 물어요.”
너무 화가 났습니다. 순하든 아니든, 개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동물을 무서워하는 저한테는 무의미한 이야깁니다. 자기가 키우는 개 때문에 사람이 놀랐으면, 일단은 “괜찮아요?”라거나 “많이 놀랐어요?”라거나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가 먼저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우리 개 순해요”라니. 심지어 바닷가엔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주인은 개의 목줄도 풀어준 채 마음껏 뛰어놀도록 하더군요. 조금 뒤엔 “덥지? 시원하게 수영하자”라며 개를 데리고 바다로 가더니 물놀이를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저는, 쿵쾅대는 심장이 진정되지 않아 그때까지 계속 떨고 있었고요.
목줄에 매인 개의 답답함을 안쓰럽게 여기고, 더위에 개가 지칠까 염려하는 마음이, 왜 사람을 대하는 ‘예의’나 ‘배려’로는 이어지지 못하는지 이해가 잘 안됐습니다. 반려동물이 누군가에겐 ‘반려’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겐 ‘공포’라는 사실을 정말 몰라서 그런 걸까요?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1천만명에 이르는 시대라고 합니다. 거칠게 접근하자면, 동물이 무서운 저 같은 사람에겐 1천만 가지의 ‘잠재적 공포’가 존재하는 시대죠. 그렇다고 반려동물을 기르지 말자거나,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을 미워하진 않습니다. 제가 모르는 감정을 느끼고 동물과 교감하려 하는, 저와는 취향이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니 부디, “우리 개 순해요”는 마음속에 넣어두시고, 동물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의 취향도 좀 배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유별난 사람’은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좋아할 거라 여기거나, 좋아하지 않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조혜정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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