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 홍주성 안의 선정비 무리.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지금 사는 동네로 온 지 올해로 10년째입니다. 오래 살긴 했지만, 아침에 집을 나와 밤늦게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동네에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맥주나 아이스크림 따위를 사러 가는 집 앞 작은 슈퍼마켓 주인 부부의 얼굴 정도나 기억할까요.
자주 시켜 먹는 닭집에서 통닭 한 마리를 주문한 어느 저녁이었습니다. 배달 온 아저씨가 닭을 건네주며 이러시더군요. “이 집에 참 오래 사시네요.” 세입자가 같은 집에 사는 평균 기간이 3년6개월이라고 하는데 전 그 기간을 훨씬 넘기며 계속 살고 있으니, 아마도 신기하고 조금은 반가워서 하셨던 말일 겁니다. 하지만 전 그 인사가 반갑지 않았습니다. 익명의 도시에선 ‘아무도 아닌 사람’으로 사는 게 가장 편하고 안전한데, ‘관계’가 생길까봐 귀찮기도 했습니다. 이 집에 여자만 산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조금 무섭기도 했습니다. 그 뒤론 그 집 닭을 시키지 않게 됐죠.
최근 ESC 연재를 시작한 카피라이터 김민철씨의 이번 글(‘
망원동 비관론자 납치사건’)을 읽다가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망원동 수많은 ‘아무도 아닌 사람’ 가운데 하나였던 그가 동네 슈퍼 아저씨의 초대를 받고, 이웃 아주머니의 차를 얻어 타면서 ‘우리 동네 사람’이 됐다는 이야기. 나라면 절대 응하지 않았을 거야, 생각하며 읽고 있는데 스멀스멀 부러움이 올라오는 건 웬일인가요? 저한테도, 익명으로만 살고 싶진 않다는 욕구가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때 닭집 아저씨께 물이라도 한잔 건네고 계속 그 집 닭을 먹었다면 어땠을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전국 각지에 널린 비석은 물론이고 고인돌, 암각화 같은 돌 유물도 결국은 ‘나’라는 사람이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했다는 걸 알려주는 증거겠지요. 얼마나 알려주고 싶었으면, 그 무겁고 단단한 돌을 옮기고 쪼았을까요? 오늘 퇴근길엔 집 앞 슈퍼에 들러, 주인아주머니께 먼저 말을 걸어봐야겠습니다.
조혜정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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