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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입사 삼수생의 이야기

등록 2016-11-17 11:53수정 2016-11-17 13:56

[Let's ESC]

유물론자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의 세계 또는 영혼의 세계가 있다고 믿습니다. 삼수 끝에 <한겨레> 입사 시험에 합격했을 때도, 제가 꿈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랐던 주변 사람들의 ‘염력’ 덕분이라고 일기장에 썼었죠. 인간에겐 먹고 자는 육신도 있지만,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는 정신도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이 죽거나 곁에 없다고 해서 그 정신이 사라지거나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이 정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이어주는 직업이 종교인입니다. 그들 중, 무교 종사자인 무당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합니다. 단체행동에 나서자는 이들도 있다죠.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무녀처럼 누군가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지는 못했을지언정 대놓고 비난받지는 않았는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싸잡아 욕을 먹기 때문이랍니다. 한 무당은 “최순실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더군요. 무당도 아닌 사람들이 온 나라를 들쑤셔 사리사욕을 채운 게 문제인데, ‘무당이 나라를 망쳤다’는 개탄이 쏟아지니 사심 없이 이웃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진짜 무당’들이 분노할 만도 하지 않겠습니까.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거나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말에 담긴 정신의 세계에 대한 믿음 자체는 크게 문제 삼을 일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미신이 작동하고, 미신적 사고가 사회적 시민권을 얻고, 그래서 세치 혀로 혹세무민하는 자들이 권력을 쥐고 이권을 챙기며 득세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 게 아닐까요? 도덕성도 없고 수치심조차 느끼지 못해도 ‘시이오(CEO) 신화’를 이룬 사람이니 그가 대통령이 되면 나도 부자가 될 것만 같은 착각, 능력·의사결정과정 등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어도 ‘사심 없다’는 이미지를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그 아버지의 시대처럼 풍요로워질 것만 같은 환상, 바로 ‘우리의 탐욕’ 말입니다.

안 그래도 세상 시끄러운데 ESC까지 왜 이래, 갑자기 머리가 지끈지끈해지셨나요. 김미영 기자가 살신성인의 자세로 쓴 ‘헐~’ 코너 ‘임신부라뇨?’를 읽어보세요. 푸훗, 잠시나마 웃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와중에도 ESC의 일상탈출 몸부림은 계속됩니다.

조혜정 팀장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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