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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러우판의 추억

등록 2016-11-24 14:30수정 2016-11-24 14:55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룽산사.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룽산사.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벌써 10년 전이네요. 대만(타이완) 타이베이로 며칠 출장을 간 적이 있습니다. 낮에 취재가 끝나면, 통역을 맡아준 유학생과 함께 여기저기를 다녔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단수이 바닷가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룽산사에 가서 반달처럼 생긴 작은 나뭇조각을 던지며 점도 쳐보고, 야시장에서 주전부리며 잡동사니를 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중에서도 잊지 못할 기억이 취두부와 대만식 돼지고기 덮밥인 ‘루러우판’입니다. 출장 마지막 날, 타이베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투청에 다녀오던 길이었습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취재가 끝났죠. 중년인 운전기사분께서 “진짜 대만 음식을 먹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대만 서민들이 많이 가는 흔한 식당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기사분께서 꼭 먹어봐야 한다고 한 음식이 바로 취두부와 루러우판. 오래 유학 생활을 했던 통역은 취두부를 맛있게 먹더군요. 저는… 그 고약한 냄새 때문에 제대로 삼키지도 못했죠. 조금 겁을 먹은 채 이번엔 루러우판에 도전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살짝 단맛이 도는 짭조름한 간장 양념이 쏙쏙 밴, 부드럽고 폭신한 돼지고기가 입안에서 녹아내렸습니다. 아아, 기사님, 그리고 통역님, 이 맛난 음식을 왜 마지막 날이 돼서야 알려주셨나요.

대만 맛집을 소개한 ‘먹고 또 먹어도 맛있는 것 천지’를 읽다가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대만 사람들의 삶 속에 스며 있는 ‘생활음식’을 경험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자기 시간을 내준 기사분의 친절함과 배려도 새삼 고마웠습니다.

나이는 그렇게 먹어야 하는 게 아닐까요. 내가 가진 것을 내 뒤에 오는 사람에게 나눠주고, 나와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이를 만나도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다’고 인정하는 것. 저도 모르게 “우리 땐 안 그랬는데 요즘 애들은 왜 이래?”, “회사에 저런 옷 입고 와도 되는 거야?”를 내뱉는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아니라고 발버둥 치면서도 벌써 ‘꼰대’의 길에 접어든 게 아닌지 조금, 두렵습니다.

조혜정 팀장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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