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목성이나 토성이 꿈에 나옵니다. 그냥 별이 아니라, 정확히 목성과 토성입니다. 유성물감을 물 위에 뿌려 저은 뒤 도화지를 대면 찍혀 나오는 마블링 그림처럼 아름다운 무늬가 특징인 목성. 얼음이 인력을 만나 변신한, 신비로운 테를 두른 토성. 꿈속에서 우주공간에 둥둥 뜬 채 그 두 별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있노라면 그야말로 꿈같기만 합니다. 깨어나면 생각합니다. 아, 어릴 때 방학숙제로 내준 과학책 읽기를 너무 열심히 했어!
기억은 외가로 이어집니다. 초등학교 땐 방학이면 시골인 외가에서 지내곤 했습니다. 제가 나고 자란 대도시와 달리, 그곳엔 빛이 별로 없었습니다. 저녁 뉴스가 끝나면 으레 잠드는 노인들이 거의 대부분인 마을이었으니 당연했겠죠. 불 꺼진 집 안에선 책도 읽을 수 없고 리코더도 불 수 없으니, 괜히 엄마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럴 때 문을 빼꼼히 열면 캄캄한 하늘에선 별이 쏟아졌습니다. 마실 가는 외할머니를 따라나섰다 돌아오는 밤길엔 은하수가 길을 밝혀주기도 했습니다.
그 별들이 다시 생각난 건 대학 때입니다. 새초롬한 깍쟁이처럼 보였던 한 친구가 그날은 웬일인지 ‘도망’을 가지 않고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학교 근처 허름한 술집을 전전하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언덕길을 한참 올라야 하는 선배네 자취방.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일행의 뒤를 따르는 제게 그 친구가 물었습니다. “야, 너 저거 뭔지 알아?” 으응? 친구는 목을 뒤로 꺾은 채 하늘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뭔데?” “북두칠성은 알 거고. 저건 큰곰자리, 저건 카시오페이아자리, 저건….” 그날 밤. 제 마음속 ‘새초롬한 깍쟁이’는 어릴 때부터 별을 좋아하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무언갈 적는 걸 좋아하고, 고집 세지만 주변을 잘 챙기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함께 별을 보곤 합니다.
304개의 별이 된 희생자들도 저처럼 별에 추억이 있었을 테고, 3년 전 그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또 다른 추억을 쌓아나갔을 테지요. 미안합니다. 할 수 있는 게 잊지 않는 것뿐이어서. 그래도 별을 볼 때마다 304개의 별을 기억하겠습니다. ‘생존자’라는 이름으로 그날 이후 1천여일을 살고 있는 172명이 죄책감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예쁜 별을 보며 웃게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조혜정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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