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초등학교 동창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6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입니다. 계속 왕래한 1명 말고는, 대부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처음 만났죠. 혈연, 학연, 지연 같은 걸 강조 또는 강요하는 사람을 싫어해 그런 종류의 모임은 근처에도 안 가는데, 이 약속을 정하고는 마음이 설레더군요. 추억 때문이었겠죠. 다들 어떻게 변했을까,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했습니다.
놀라운 건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누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보겠더라는 겁니다. 누구는 살이 붙고, 누구는 주름이 늘었고, 누구는 새치가 보였지만, 그 얼굴엔 열세살의 소년소녀가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우린 언제 만나도 13살이지. 같이 보낸 시간이 그때에 멈춰져 있잖아” 하는 한 친구의 말이 유난히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한 학년에 네 반, 200여명이 고작인, 운동장도 없는 작은 학교. 떡이나 김치가 ‘촌지’였던, 형편이 넉넉지 않은 동네. 동경하고 좋아했던, 갓 부임한 담임 선생님. 그런 기억을 공유하는 친구들과의 이야기는 끊어질 새가 없었습니다. 계곡에 도롱뇽 잡으러 갔다 선생님한테 걸려 혼난 일, 수학여행 때 찍힌 사진, 별났던 친구들과 얽힌 추억담에 ㄱ은 운동선수가 됐고, ㄴ은 선생님이 됐고, ㄷ은 사업을 하고 있다는 ‘근황 토크’가 뒤섞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를 모르겠더군요. 거기에 담임 선생님까지 특별출연해주시는 바람에 분위기는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죠.
내가 누구인지 ‘존재증명’을 하지 않아도, 나 이런 사람이야 ‘인정투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저 함께 웃고 떠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자리가 대체 얼마 만인가 싶었습니다. 30년 가까운 단절로 어색할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서로 ‘아이고, 저거 언제 사람 되나’ 했던, 저를 포함한 꼬마들이 제 몫의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견뎌내며 어엿한 어른이 된 게 참 뿌듯하고 안도감도 들었습니다.
‘원형질의 나’를 서로 알고 있는 사람과의 만남이 이런 게 아닐까요. 세월이 흘러 외양이 바뀌고 성격이 달라지더라도, 결코 변하지 않는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조혜정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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