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파면 결정이 내려지자 서울 안국역 사거리에서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두근두근, 콩닥콩닥.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불판 위의 곱창처럼 펴졌다가 졸아들었다. 대학 입시를 치를 때도 이보다 떨리지는 않았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오전 11시께였다. 11시21분. 드디어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가 들렸다. 최근 본 영화 <트럼보>가 떠올랐다.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돌턴 트럼보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트럼보는 <로마의 휴일> 등을 쓴 천재 작가로 1950년대 광폭한 매카시즘의 피해자다. 그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삶이 파괴됐고, 긴 세월 공포정치와 싸웠다. 만약 기각되었다면 우리 사회에 넘쳐날 트럼보들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날 오후 4시30분, 헌법재판소 근처에서 음식 취재가 있어 지하철 안국역에 내렸다. 어수선했다. 취재 장소는 헌법재판소의 북쪽. 경찰이 막았다. 길을 돌아가려면 취재 약속에 늦을 것 같았다. <한겨레> 기자라고 얘기하고 통과를 부탁했다. 경찰은 기자증이나 명함을 요구했다. 이때 갑자기 몸에 태극기를 칭칭 감은 중년여인이 소리를 질렀다. “한겨레라고? 미친것들!” 이단옆차기로 칠 태세였다. 커다란 막대기를 든 할아버지들도 “무슨 일이야!” 소리 지르며 달려왔다. 중년여성을 도우려는 거였다. 이미 현장에 있던 기자 몇 명이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뒤였다. 순간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맞아 부어서 더 커져버린 내 얼굴, ‘도대체 왜 거길 간 거야. 정치부도 사회부도 아닌데’ 같은 동료들의 애정 어린 핀잔…. 험악해진 분위기가 격앙되려는 찰나, 경찰이 그들을 말렸다. 그러곤 비교적 안전한 곳까지 직접 나를 데려다줬다. 경찰이 믿음직스러웠다. 난생처음이었다.
그에게 내가 한겨레 기자임을 확인해줘야 했다. 마침 사원증도, 명함도 없었다. 기자수첩을 내밀었다. 표지에 ‘한겨레’가 찍힌 것이었다. 기자수첩을 넘겨보던 경찰이 한참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물었다. “기자 맞아요?” 기자수첩에는 이런 게 적혀 있었다. ‘용궁횟집, 남촌횟집, 충성횟집’, ‘셀러리 50g, 월계수잎 조금, 양파 20g을 끓는 물에 넣어 우리고’, ‘○○국수집, 가락국수 3000원, 비빔국수 5000원. 면 탱탱.’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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