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저녁, ‘핫’하다는 서울 용산구 해방촌을 찾았다. 남산으로 이어진 오르막길 양쪽으로 이국적인 술집과 음식점이 즐비했다. 가게 밖은 대기자들로 북적였다. 우리 부부가 간 곳은 바와 식당이 합쳐진, 바 같기도 식당 같기도 한 곳이었다.
손님의 90% 이상은 20~30대 여성. 테이블 자리는 꽉 차, 바에 앉아 음식을 먹었다. 와인도 몇 잔 곁들였다. 소문답게 맛은 있었지만 가격이 거의 청담동 수준으로 비쌌고 좁은 가게 안을 꽉 채운 사람들의 목소리와 음악 때문에 너무 시끄러워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술도 밥도 제대로 못 먹은 느낌이랄까. 계산서의 가격을 보고 ‘뜨악’하면서 나오다 ‘이 집은 뭐가 전문일까’란 생각이 들었다.
술도 깰 겸 길을 따라 남산 쪽으로 올라갔다. 한국전쟁통에 피난민들이 정착한 곳답게 예스러운 풍경이 눈에 띄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한 가게의 간판. ‘열쇠 구두 전문 수리점’이란 문구 옆에 ‘통닭’이란 글자가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건물 외벽엔 ‘양념치킨’이 적힌 작은 간판도 걸려 있었다. “이게 뭐 하는 집이야?” 아무리 봐도 뭘 하는 곳인지 모르겠어서 일단 사진을 찍었다.
아무리 봐도 들어갈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간판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휴대전화로 연결됐다. 한 중년남성이 받았다. “여보세요” 하는데, 말문이 막혔다. “닭집이죠?”라고 해야 할까, “열쇠집이죠?”라고 해야 할까. 고민하다 “열쇠집이죠?” 물었다. “맞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또 물었다. “간판에 뭐가 많이 쓰여 있어서요. 이걸 다 하시나요?”
사연은 이랬다. 사장님이 “옛날에” 이곳에서 한 2년 동안 통닭집을 했다. 그러다 열쇠·구두 수리집으로 업종을 변경했는데, 간판 교체 비용이 많이 들어 작은 간판은 그냥 두고 큰 간판만 글씨를 덧씌우셨단다. 그렇다면 이곳은 열쇠집인가? 아니다. 와이셔츠 생산을 하는 곳이다. 이곳을 넘겨받은 와이셔츠집 사장님도 간판을 바꾸지 않았을 뿐이다. 열쇠집 사장님은 근처 다른 곳으로 옮겨 열쇠집을 계속 운영하고 있고, 간판에 적힌 전화번호도 휴대전화로 연결해둬 불편하지 않다.
이제부터 해방촌 근처에서 이 간판을 발견하시는 분은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겠다. 이 가겐 열쇠도, 구두도, 통닭도 아닌 와이셔츠가 전문인 곳이니까. 혹시 구두굽이 부러지거나 급히 열쇠를 고쳐야 할 때도 당황할 필요가 없겠다. 그 간판에 쓰인 번호로 전화하면 될 테니까.
글·사진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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