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말 충북 영동 월이산 자락 옥계폭포를 찾았다. 옥계폭포는 웅장한 바위절벽에 걸린, 높이 30m에 이르는 수직폭포다. ‘국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동 출신 난계 박연이 자주 찾아와 악상을 가다듬었다는 폭포다. 늦겨울 추위 속에 손을 비비며, 아직 물 반 얼음 반인 폭포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검은색 차량이 들어오더니, 중년 남녀 4명이 차에서 내렸다. 이들은 서로 아무 말도 없이 곧장 폭포 밑 커다란 바위 앞으로 걸어갔다. 긴 막대기와 검은색 가방을 들고 일렬로 걸어가는 모습이 기괴하기까지 했다. 폭포 앞에 서서 말없이 물줄기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정적 속에 폭포 물소리는 더욱 거세지는 듯했다. 잠시 뒤 이들은 각자 가방을 열고 돗자리를 하나씩 꺼내 바위 앞쪽에 깔고 올라앉아 가부좌를 트는 것이었다. 셋은 머리를 연신 조아리며 두 손을 모아 비볐고, 하나는 뒤쪽에서 이들을 지켜봤다. 무속인들이었다.
뒤에 서 있던 남자에게 다가가 “폭포에 무슨 기도를 하느냐”고 물었다. 눈빛 형형한 남자는 폭포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이 폭포, 아주 영험한 폭포입니다. 기운이 세요.” 남자는 청주에서 온 무속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기도하는 이들은 제자들이다. 무속인들은 밤낮으로 영험한 곳을 찾아 기도하는데, “밤에는 원력을 받기 위해, 낮엔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복을 빌기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30분 뒤 기도하던 이들은 일어나 돗자리를 접고 가방에 담았다. 자리를 뜨면서 남자가 말했다. “이런 말 하면 믿으실란가 모르지만… 이 폭포에 할머니가 살아요.” 그가 북채로 폭포를 가리켰다. “오래 기도한 우리 눈엔 보이죠. 산신령 할머니.” 폭포를 다시 보니 얼핏, 흰 치마를 입고 기도하는 할머니처럼 보이기도 했다.
혼자 남아 사진을 더 찍고 돌아나오다가, 무슨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다. 헉. 뭔가 달라졌다. 손을 모아 기도하던 할머니가 손을 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럴 수가. 눈 비비며 폭포 앞으로 갔을 때 깨달았다. 폭포 중간 바위에 얼어 있던 커다란 얼음조각이 떨어져 내렸다는 걸.
글·사진 이병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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