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이 돌아온 시각은 새벽 3시30분이었다. 길 한복판에서 걷다가 아내의 전화를 받은 순간부터 기억이 난다. 전날 부서 환송·환영회 2차를 가던 순간부터 기억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당장은 기억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가방이 없었다! 지금까지 취재해온 모든 자료가 담겨 있는 노트북이 들어 있는 검은색의 백팩이 말이다. 눈앞이 깜깜했다. 기자에게 취재자료는 목숨과 같은 것. “자기야 가방이 없어~.” 새벽까지 안 들어온 남편이 걱정돼서 임신한 몸을 이끌고 나온 아내는 더 황당한 소리를 하는 남편 때문에 실컷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아직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남편을 이끌고 이 화상이 들어갔을 법한 길가 구석구석을 뒤지며 새벽길을 갈랐지만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 연차를 내고 백방으로 뛰었다. 회사 동료 증언에 따르면 2차에서 내내 졸던 나는 택시를 타던 순간 가방을 멨다고 한다. 휴대전화 문자로 확인한 택시 카드 결제시각이 1시40분. 의문의 2시간 사이에 가방을 어딘가 둔 것이었다. 나를 태웠던 기사를 찾아 택시회사에 전화했지만 배차계는 말을 돌리며 잘 연결해 주지 않았다. 경찰서에 나가 진정서를 내고 가방을 찾아 달라고 하였다. 경찰관은 금은보화라도 들었냐는 식으로 쳐다봤다. 서울시에 분실신고를 하고, 통신회사에 위치조회 신청을 하였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현실을 인정해.” 마음을 비우고 있던 그날 저녁 8시쯤 처음 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 나 ○○아파트 경비인데.” 구세주의 강림이었다. 저녁까지 주인이 안 나타나자 가방을 뒤져 명함을 보고 연락한다는 것이었다. 수능 만점을 받았던들 그렇게 기뻤으랴! 알고 봤더니 나는 큰길 건너편 아파트 화단에 들어가 2시간을 보내다 가방을 두고 기어나왔던 것이다. 그제야 아내가 말했다. “새벽에 자기가 ‘올림픽공원에 갔다 온 거 같다’고 했는데. 단서는 거기에 있었군!” 그나저나 그 아파트가 경비 아저씨를 자동문으로 대체한 신식 아파트였다면 가방을 영영 찾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 아찔하다.
글·사진 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