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헐~
말이 씨가 됐다. 아니, 씨가 말이 된 건가. 두 달 전 ‘웃기고 자빠진 글쓰기’로 동영상 강의를 만들자고 한겨레교육문화센터(센터)에서 제안했을 때, 우스개로 말 탈을 쓰고 강의하면 어떻겠냐고 대꾸했다. 강의 도중에 말 탈을 벗으며 “이게 말이 돼?”라고 하면 재밌겠다고 ‘깨방정’을 떨었다. 담당자인 김영우 팀장은 “역시”를 남발하면서 ‘핵꿀잼’이라고 했다. 거기까지인 줄 알았다.
촬영을 시작한 8월 말, 스태프의 손에는 말 탈이 들려 있었다. “홍익대 앞까지 가서 어렵게 구했어요.” 센터 관계자는 웃으며 말했다. 아~ 놔~.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라니. 그래~ 한 번만 쓰면 되겠지. 빌미를 제공했으니 호기롭게 받아들이자. 그러나 말 탈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살찐 볼살이 눌려 말도 하기 힘들었다. 말 탈의 콧구멍이 눈인 셈이어서 고개를 살짝 숙여야 앞이 보였다. 무엇보다 싸구려 고무재질인 탓에 얼굴과 입술 부위가 화끈거렸다. 답답함에 숨쉬기도 힘들었다.
감독님은 인트로(소개하는 첫 문장) 장면에 써야 한다며 말 탈을 쓴 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무실로 들어가라고 했다.(질겁한 탑승객들은 ‘뭔 미친놈이냐’는 표정이었다) 사무실에 앉아서 컴퓨터 자판도 치고 전화도 받으라고 했다.(깜짝 놀란 국장은 ‘참 열심히 산다’고 했다) 임신 8개월인 후배 기자와 대화를 나누라고도 했다.(후배는 태교에 안 좋다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신문사 6층 테라스에서 말 탈을 벗고 “이게 말이 돼?”라고 멘트도 날리라고 했다.(현장 사진을 보니 말 탈에 머리와 얼굴이 짓눌려서 꼬락서니가 가관이었다) 9층 옥상에서 말춤도 추라고 했다.(콧구멍으로 보니 나이 많은 선배들이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무슨 작가주의가 따로 없었다. 7층 편집국에서도 찍자는 걸 간신히 말렸다.(저도 회사 생활해야 되거든요~)
20강 강의, 3번의 촬영이 끝났다. 이번주 마지막 촬영이다. 개강은 11월. 말 탈 쓰고 ‘생쇼’까지 했는데 수강생이 없으면 난 뭐 한 거지? 동영상 강의라 최종 결제한 이가 없으면 돈도 못 받는데.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상황이라니~.
오승훈 <한겨레21> 문화팀장 vino@hani.co.kr
말 탈을 쓴 오승훈 기자. 오승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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