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Fun한 이야기 | 헐~
이놈의 담배라고 부른다. 새해엔 끊어야지 한다. 이렇게 되뇌며 살아온 게 몇해인지 모른다. 기침과 재떨이와 주변의 눈총을 거느리고 숨차게 살아왔다. 취재 중에도 숨차게 살다 보니, 주머니에 휴대용 재떨이로 쓸 만한 걸 갖고 다니게 됐다. 휴대용 재떨이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때그때 꽁초를 모았다가 버릴 수 있는 작은 통이면 된다. 한심해 보이겠지만 종이컵도 요긴하게 쓴다. 10여년 전엔 작은 플라스틱 필름통을 이용했었다. 필름 카메라 사용 때 일이다. 크기도 작고, 꽁초를 넣고 뚜껑 ‘딱’ 닫으면 깔끔했다. 그토록 깔끔한 재떨이를 주머니에 넣고 돌아치던 어느 화창한 가을이었다. 이미 꽁초가 가득 든 필름통을, 좀더 쓸 요량으로 그대로 주머니에 넣고 있었더랬다.
늦가을 감나무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분이 잘 익은 홍시 두개를 맛보라고 주셨다. 하나는 먹고 하나는 무심코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두 시간을 더 돌아다닌 뒤, 차로 돌아와 담배를 꺼내 물고 주머니의 재떨이를 찾았다. 물컹! 하고 만져지는 홍시. 손을 꺼내 보니, 뭉개진 홍시 말고 다른 것들이 보였다. 담배꽁초들. 다시 손을 넣자 으깨진 홍시와 뒤죽박죽이 된 담배꽁초들이 잡혔다. 그토록 믿었던 필름통의 뚜껑이 열려, 10여개의 꽁초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끔찍했다. 함께 넣었던 취재수첩도 홍시와 담뱃재로 온통 뭉개져 있었다. 주머니를 씻어내는 데 휴지 한뭉치를 다 쓰며 생각했다. 이놈의 담배 끊어야지! 그러고 10여년이 지나, 연말이다. 조용히 ‘이놈의 담배’를 다시 불러본다. 만만찮은 놈. 끈질긴 놈. 내년 연말엔, 널 다시 부르지 않을 테다!
글 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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