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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땅따먹기 하던 밤이 지나면

등록 2020-11-19 07:59수정 2020-11-19 10:30

부루마불. 신소윤 기자
부루마불. 신소윤 기자

밤마다 땅을 사 모으던 날들이 있었다. 두 개의 주사위를 굴려 땅을 사고 건물을 지어 욕심껏 재산을 불리거나 혹은 그러다 파산하는, 추억의 게임 ‘부루마불’. 코로나19로 인한 ‘집콕’이 지긋지긋해져 가던 지난봄과 여름, 우리는 숱하게 주사위를 굴려댔다.

술친구인 옆집 이웃이 어느 날 한잔하고 헤어지며 “언제 우리 집에 와서 부루마불이나 한판 하자”고 한 게 구매 계기였다. 남편과 “언제 적 부루마불이냐, 옆집도 심심하긴 어지간히 심심한가 보다”라고 얘기하며 그 길로 따라 샀다. 지난 4월 인터넷쇼핑몰 위메프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 3월1일부터 약 6주간 부루마불 판매가 무려 778% 늘었다고 하는데, 우리도 한 몫 보탠 셈이다.

20여년 만에 다시 만난 한국 보드게임계의 조상님은 여전히 재밌었다. 돈 개념 없는 7살 딸아이는 늘 ‘깍두기’다. 손님이 오는 날에는 그나마 두 팀, 세 팀이 꾸려졌지만 셋인 우리끼리 할 때 아이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누구 편에 붙어야 더 유리할지, 방황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게임은 누가 잘하고 못 하는지 정하기 어려운 ‘운발’ 게임이기 때문이다. 부루마불은 1930년대 미국 보드게임 ‘모노폴리’(monopoly·독점)를 원조로 한다고 알려져 있다. 땅과 건물을 사고, 상대방이 파산하면 이기는 게임의 기본 운영 방식은 유사한데, 모노폴리는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담보 대출, 경매 입찰, 협상 등 더 복잡한 규칙을 수행해야 한다. 부루마불은 규칙 대부분을 단순화해 주사위 운에 게임의 승패가 갈린다.

수도권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했다. 다시 게임판을 펼쳐야 할 시간인가. 추억의 여행지, 가고 싶은 나라를 종이판에 짚어 가며 땅따먹기하는 밤이 지나다 보면, 손으로 짚었던 그곳에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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