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스포츠 야구·MLB

“9회말 2아웃 역전주자의 절박한 심정으로 썼다”

등록 2015-01-26 18:55

넥센 히어로즈의 열혈팬인 ‘넥통령’ 테드 스미스 씨.
넥센 히어로즈의 열혈팬인 ‘넥통령’ 테드 스미스 씨.
[짬] 책 펴낸 프로야구 넥센 응원단장 테드 스미스
그는 응원하던 팀이 승리했을 때의 기쁨을 이렇게 표현했다. “쾌감에 젖은 우리는 길바닥에 드러누워 빗속에 꿈틀대는 지렁이처럼 굴러다니며 꿈틀댔다. 미칠 듯한 쾌감이었다. 이런 순간에 나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 요지경인 세상에 야구라는 것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승리의 기쁨이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감사함으로 이어질 수 있다니….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응원단장 무대에 오른 심정은 이렇게 표현했다. “단상에 오를 때면 뭔지 모를 에머슨풍의 성취감, 무언가를 초월한, 어쩌면 목적론적인 감정을 느낀다. 솔직히 흥분된다. 무대에 오르는 건 첫 키스, 대학 합격 통지서 그리고 박병호의 홈런을 한데 묶어 놓은 그런 느낌이다.”

프로야구 팬들에겐 ‘넥통령’ ‘테드찡’으로 널리 알려진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열혈팬, 캐나다인 테드 스미스(28·사진)씨가 지난 3년간 한국 생활을 풀어낸 <페이머스>(매직하우스)를 출간했다. 마치 9회말 투아웃에 역전 주자가 나가 있는 타자의 마음으로 썼단다. 책이 잘 팔려 인세 수입을 올려야 계속 한국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캐나다 캘거리 출신 명문대 졸업
2002년 ‘붉은악마’ 응원 화면에 매료
남아공 월드컵 때 한국에 와 ‘체험’

2011년 정착해 ‘넥통령’ ‘테드찡’ 명성
생업 접고 거의 모든 경기 동반응원
“인세 많이 벌어야 계속 머물 수 있어”

그는 지난 3년간 넥센의 홈경기 대부분과 원정경기를 쫓아다니느라 빈털터리가 됐다고 한다. 한때 원어민 교사와 방송 출연, 직장생활을 하며 벌어들인 수입으로 샀던 승용차와 텔레비전 등 돈이 될 만한 가재도구도 거의 팔았다. 생활비로 충당하기 위해서였다. 응원을 위해 원어민 교사직도 포기했다.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해 방송에 고정출연도 제의받았으나 역시 응원을 하기 위해 거절했다.

“돈을 아끼려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고, 하루 두끼만 먹었어요. 점점 푸석해지는 얼굴을 감추기 위해 거리마다 나눠주는 샘플 비비크림을 얻어 발랐어요. 동네 마트 시식코너를 정기적으로 돌았고, 천원짜리 양상추와 라면이 질릴 땐 가끔 절 알아보며 밥을 사주는 사람 없을까 싶어, 넥센 복장을 하고 신도림 옥외 음식점을 배회하기도 했어요. 거의 부랑자 생활이었어요.”

테드는 2013년 10월 서울 낙원상가의 악기점에 갔다. 바로 2주 전에 응원 도구로 샀던 트럼펫을 팔아 귀국 준비를 할 참이었다. 캐나다에서 아버지가 생활고에 시달리는 아들을 위해 비행기표를 챙겨 보내준 때였다. 주인과 막 흥정을 하려는 순간 문자메시지가 왔다.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다는 제안을 해온 것이었다. 그길로 다시 한국에 주저앉았다. 그러니 절박한 심정으로 책을 쓴 셈이다.

“2013년엔 넥센의 218경기 가운데 214경기를 쫓아다녔어요. 지난해 넥센의 플레이오프를 포함한 138경기 가운데 104경기를 현장에서 응원했어요. 원정경기는 모두 참가했고, 홈경기는 책을 쓰기 위해 몇번 빠졌어요.”

지난 19일 넥센의 홈구장인 목동구장에서 만난 테드에게 사진 촬영을 위해 외투를 벗어주길 요청했다. 날은 추웠고 구장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시원스럽게 외투를 벗으며 이렇게 말했다. “캐나다 출신입니다.” 겨울올림픽이 열렸던 캘거리 출신이니 추위엔 강하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니 콜록거렸다. 감기 든 상태였다.

그는 캐나다의 명문 맥길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부전공으로는 동아시아학을 공부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잘한다. 고교 시절 농구선수로 활약했고, 응원단장도 했다. 그를 한국으로 이끈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방송 화면으로 본 한국의 붉은악마 응원 모습이었다.

“똑같은 복장을 한 사람들이, 하나의 원대한 목표에 집중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사건은 나폴레옹이 군대를 이끌었던 이후로는 이번이 최초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한국이 골을 넣는 순간은 트라팔가르 전투와 2차대전 유럽 승전일을 합쳐놓은 듯한데, 마치 우주에서 레이저를 쏘고 난리가 난 상황이라고 할까. 축하라는 단어로는 그 순간을 충분히 묘사할 수 없었다. 광희(狂喜)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그 광경을 직접 보리라 맹세했다.”

그 뜨거운 한국의 응원 열기를 직접 느끼고 싶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에는 한국에 와서 경기 중계를 함께 봤다. 2011년 한국에 정착한 그가 넥센의 응원단이 된 것은 순전히 추운 날씨 탓이었다. 서울 연고팀 중에서 응원할 구단을 고르던 그는 목동구장에서 열린 경기를 보러 갔다가 추위를 견디다 못해 넥센의 공식 팀재킷을 9만5천원의 ‘거금’을 들여 사서 입었다. 그때부터 하위팀 넥센을 응원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테드는 책을 통해 한국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고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거침없이 도전하는 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돈이 되는 일에 모든 것을 거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지금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위해 당장 도전을 하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 자신 한때 꿈이었던 배우가 되는 것은 이제 포기했다. 대신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실천하기로 했다. 앞으로 한국 문화와 한국의 프로야구를 소개하는 책을 쓰고 싶단다.

“응원을 따라다니면서 한국 친구들로부터 가족의 깊은 사랑을 느꼈어요. 그래서 한국에 더욱 친근감이 가요.” 그의 부모는 그가 청소년 때 이혼했다. “넥센의 마무리 투수 손승락을 가장 좋아해요. 마운드에 서서 거침없이 스트라이크 존을 향해 공을 던지잖아요. 전혀 주저하지 않고….”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스포츠 많이 보는 기사

NBA 돈치치 떠나보낸 댈러스팬 ‘농구장 앞 장례식’ 1.

NBA 돈치치 떠나보낸 댈러스팬 ‘농구장 앞 장례식’

전지희, 신유빈과 대결 뒤 조촐한 은퇴식…“마지막 경기 특별했다” 2.

전지희, 신유빈과 대결 뒤 조촐한 은퇴식…“마지막 경기 특별했다”

김하성, 탬파베이와 2년 419억원…팀 내 최고 연봉 3.

김하성, 탬파베이와 2년 419억원…팀 내 최고 연봉

손흥민, 자책골 유도·시즌 7 도움…토트넘 리그 4연패 탈출 견인 4.

손흥민, 자책골 유도·시즌 7 도움…토트넘 리그 4연패 탈출 견인

프로당구 PBA, 2부 파이널 신설해 상금 6천만원 5.

프로당구 PBA, 2부 파이널 신설해 상금 6천만원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