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이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포르투갈과 경기를 하루 앞둔 1일 오후(현지시각) 카타르 알라이얀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알라이얀/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월드컵에는 다양한 징크스가 있다. ‘외국인 감독은 우승 못 한다’도 그중 하나다. 실제로 1930년 1회 우루과이 대회 때 알베르토 수피치 감독(우루과이)부터 2018년 21회 러시아 대회 때 디디에 데샹 감독(프랑스)까지 모두 자국 출신의 사령탑이 이끈 팀이 피파(FIFA)컵을 품에 안았다. 브라질, 프랑스, 이탈리아,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등 전통의 축구 강국의 경우 인재 풀이 풍부해서 굳이 외부에서 대표팀 감독을 수혈할 필요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2022 카타르월드컵 본선 참가 32개국 중 자국 출신이 아닌 외국 국적의 사령탑이 지휘하는 곳은 파울루 벤투 감독(포르투갈)이 이끄는 한국을 포함해 9개국. 하지만 2일 현재 조별리그 최종전을 앞둔 벤투 감독을 제외하고 8개 나라는 모두 16강 탈락의 비애를 맞았다. 특히 피파(FIFA)랭킹 2위로 우승을 노리던 F조의 벨기에는 조별리그 3차전 크로아티아와 경기에서 무승부(0-0)를 기록하며 1승1무1패(승점 4)로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스페인 출신의 로베르토 마르티네스 감독은 2018 러시아월드컵 때 벨기에를 32년 만에 4강 무대에 올려놨지만 이번 대회에선 부진한 공격력으로 조기 탈락의 비운을 맛봤다.
마르티네스 감독 뿐만 아니라 1차전에서 아르헨티나를 저격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에르베 르나르(프랑스), 월드컵 16강 단골인 멕시코를 이끈 헤라르도 마르티노(아르헨티나) 감독 또한 일찍 짐을 쌌다. 사실 마르티노 감독은 월드컵 준비 기간 중 전술, 선수 선발 등에 잡음이 일면서 대회 전부터 “멕시코를 망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그는 16강 탈락이 결정된 뒤 “멕시코와의 동행은 끝”이라고 말했다.
조별리그에서 이방인 사령탑의 성적이 부진했다는 것은 자국인 사령탑이 강세를 보였다는 얘기도 된다. 일례로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끈 일본 대표팀은 독일, 스페인에 승리를 거두며 ‘죽음의 조’로 불린 E조를 뚫어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레이엄 아놀드 감독이 이끈 호주 또한 약체로 분류됐으나 16년 만에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모로코 대표팀 선수들이 2일(한국시각)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뒤 왈리드 라크라키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도하/EPA 연합뉴스
벨기에를 탈락으로 몬 모로코 또한 자국 출신의 왈리드 라크라키 감독이 이끌고 있다. 라크라키 감독의 경우는 월드컵 개막 3개월도 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보스니아 출신의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으로부터 대표팀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할릴호지치 전 감독은 모로코를 본선 무대에 올려놨으나 하킴 지예시 등 몇몇 톱스타를 대표팀에서 배제하고 “지루하고 예측 가능한 경기를 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면서 지난 8월 전격 경질됐다. 할릴호지치 감독과의 극한 갈등으로 대표팀 은퇴까지 시사했던 지예시의 경우 이번 대회 캐나다전에서 선제골을 넣는 등의 활약으로 모로코의 36년 만의 16강전 진출을 도왔다.
참고로, 할릴호지치 감독의 경우 2018년에도 러시아월드컵을 두 달 앞두고 일본 대표팀 감독에서 잘린 바 있다. 그 대신 선임된 이는 자국인 니시노 아키라 감독, 니시노 감독의 지휘 아래 일본은 16강에 올랐다.
자국인 사령탑의 경우 선수들과 직접적인 언어 소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자국 축구협회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다. 축구협회 사람들과 선후배로 얽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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