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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나쁜생각들 미친듯 글 쏟아내면 ‘심봤다’ 격려해줘요

등록 2021-10-27 01:25수정 2021-10-27 07:47

[짬] 치유하는글쓰기연구소 박미라 소장
‘상처입은 당신…’ ‘내 마음 기록법’ 펴내

가족학 여성학 자아초월심리학 등 섭렵

17년간 글쓰기 교실 운영 경험 등 정리

153가지 글쓰기 매뉴얼 등 ‘비법’ 소개

‘죽도록 미운 당신에게’ 첫 글감 추천

“자기 검열없이 내면 찌꺼기 끌어내죠”

상처와 트라우마로 고통스러운데, 정신과 진료나 심리 상담을 받지 않아도, 수행·수도·명상을 하거나 피정이나 수련회를 가지 않고도, 그냥 노트를 펼쳐놓고 글을 쓰는 것만으로 치유가 될까? 마음 칼럼니스트이자 심리상담가인 ‘치유하는글쓰기연구소’ 박미라(57·사진) 소장이 ‘그렇다’는 사실을 설파한 책 두 권을 동시에 출간했다. <상처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그래도봄 펴냄)와 153가지 글쓰기 매뉴얼을 담은 <모든 날 모든 순간, 내 마음의 기록법>(〃)이다.

지난 21일 박 소장을 서울 광화문 경희궁의아침 오피스텔에 있는 연구소에서 만났다.

“누구나 간절하게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내면의 고통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너무 오래 가둬두면 결국은 부패해서 언젠가 통제할 수 없는 순간이 올지도 몰라요.”

박 소장의 치유 글쓰기는 그런 발설의 욕망을 아무데서나 드러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일이 없도록,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인 노트에 발설하도록 이끈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생각을,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외계어’로 끄적여서라도 발설을 하면 내면의 공기압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해도 잘 들어주고, 비밀을 악용하지 않을 상대방을 만나 발설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쉽지 않다. 그러나 노트에 발설하는 것은 글만 쓸 수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일기장 같은 자기만의 치유 노트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박 소장의 치유 글쓰기는 쉽게 꺼내지 못해 오래도록 변비처럼 굳어버린 부정적인 감정들까지 꺼내도록 하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그가 17년간 치유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면서 정리한, 내면의 감정 찌꺼기들을 발설하기에 가장 효과적인 비법을 책에서 모두 공개하고 있다.

박 소장이 통상 글쓰기 교실에서 가장 먼저 쓰게 하는 글감은 ‘죽도록 미운 당신에게’다. 그는 10분이나 20분씩 제한을 두고 정해진 시간 내에 글을 쓰도록 한다. 망설임을 줄여 최대한 빨리 내면을 끌어내는 방법이다. 그러면 욕하며 무시했던 사람들만 ‘죽도록 미운 당신’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일찍 돌아가신 아빠, 집을 나간 엄마, 실은 사무치게 그리웠던 이들을 대상으로 꽁꽁 숨겨뒀던 마음을 털어놓는다.

“‘죽도록 미운 당신에게’ 거친 감정을 쏟아낸 후엔 그와의 관계에서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지, 그에게 뭘 요구하는지 구체적으로 써보면 좋아요. 늘 윽박지르는 남편에게도 같이 화를 내기보다는 ‘당신이 상냥하게 해주면 좋겠어’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게 관계에 도움이 되니까요. ‘죽도록 미운 당신’이라곤 하지만, 실은 내가 화해하기를, 그리고 사랑하기를 죽도록 원했던 상대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거든요.”

박 소장이 제시한 글제는 ‘내 인생이 서러운 100가지 이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미처 하지 못한 말’, ‘자기 비난 실컷 하기’ 등으로 이어진다. 그는 처음엔 친구에게 수다 떨듯 편안한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다가 점점 더 과감하게 쓰라고 한다.

“발설의 욕망이 자기 치유의 열쇠예요. 몸의 언어가 몸부림치며 쏟아져나올 때 치유가 되기 시작해요. 그러니 온몸, 즉 심장과 내장과 두 팔 모두를 동원해 바보처럼, 고통에 울부짖는 짐승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미친 사람’처럼 쓰는 게 좋아요.”

그렇게 하면 어깨가 곧추서고, 심장이 조여온다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박 소장은 ‘심봤다’고 격려해준다. 진심을 다해서, 하고 싶은 말을 바닥부터 끌어올렸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면 남에게 분노를 뿜어내게 돼요. 그런 ‘액팅아웃’(행동화)은 자기 감정을 회피하면서 분노가 몸에 쌓여있기 때문이에요. 그동안 느끼기를 회피했던 것들을 자기 검열하지 말고 미친 듯이 쓰고 나면 ‘내가 이랬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상황을 객관화하고 거리두기가 가능해져요. 그럼 과거의 사건과 자신이 새롭게 보이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 될 수 있죠.”

박 소장은 “이렇게 아무 걱정 없는 척,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저도 열불이 끌어오를 때가 적지 않다”며 “그런 감정을 꽁꽁 억누르는 것은 자기기만이 된다”고 했다. 그는 지난 30여년간 “존재의 본질을 찾고 싶어” 가족학, 여성학, 심리학, 자아초월심리학까지 공부했다. 페미니즘 잡지 편집장과 인터넷 콘텐츠팀장 등 다양한 경험을 한 그가 글쓰기에 꽂힌 것은 그만큼 글쓰기가 누구라도 쉽게 치유의 길로 안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서였다.

그는 글쓰기가 스트레스, 분노, 성폭력 같은 심리적 상처의 치료는 물론, 감정을 통제하고 사회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도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점쟁이’에게 물어보지 말고 글을 쓰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1950~80년대 미국 하버드대와 예일대 엠비에이(MBA) 졸업생 중 자신의 미래 목표를 글로 적어둔 사람은 3%였는데, 10년 후 이들의 수입을 조사했더니, 이들 3%가 벌어들인 수입이 나머지 졸업생 97%의 수입을 모두 합친 것보다 10배나 많았다고 해요. 글을 쓰면 감정의 찌꺼기를 해소하는 효과만 있는 게 아니라 목표와 계획을 무의식에 더 깊게 각인시키는 효과도 있는 셈이지요.”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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