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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에 자연이 준 야생초 오르니 만보도 거뜬히 걷죠”

등록 2021-11-15 18:32수정 2021-11-16 02:02

【짬】 ‘야생초 마음’ 펴낸 시인 고진하 목사

강원도 원주 불편당의 고진하 목사 시인. 조현 기자
강원도 원주 불편당의 고진하 목사 시인. 조현 기자

인류 나이가 100살이라면 99년 이상은 순전히 야생에 의존해 살아왔다. 이 기준으로 보면, 인류가 땅이란 땅은 죄다 콘크리트로 덮여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도시에서 산 날은 고작 며칠이다. 따라서 로봇이 아닌 한 야생의 삶은 우리의 유전자와 의식 속에 깊게 뿌리내려 있다. 외딴 산골의 은자만이 아니라 우리도 자연인이며, 자연인으로 살아야 더 평화롭고 행복하다는 것을 전하는 <야생초 마음>(디플롯 펴냄)을 낸 고진하(68) 목사 겸 시인을 5일 찾았다.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대안리 명봉산 아랫마을에 70년 된 낡은 한옥 ‘불편당’이 있다. 마당 멍석엔 쥐눈이콩이 널려 있다. 장독대 사이로 밤새 추위를 견뎌낸 소루쟁이, 개망초 등 잡초들이 아침햇살을 맞으며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아침밥을 거르고 일찍 도착한 객을 위해 마당에서 자란 개망초로 만든 떡국떡으로 고 시인의 부인이자 야생초 요리가인 권포근씨가 떡국을 끓여 내놓는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에 ‘야생초 마음’이 서려 있다. 15년 전 이 시골집에 들어온 뒤 권씨는 마당의 야생초를 뜯어 샐러드나 반찬을 만들고, 고 시인은 장작을 패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남은 시간엔 야생초 마음으로 시로 썼다. 김달진문학상과 강원작가상, 영랑시문학상을 받기도 했던 고 시인은 최근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 시인을 기리는 박인환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고진하 목사 시인과 부인인 야생초 요리가 권포근씨. 조현 기자
고진하 목사 시인과 부인인 야생초 요리가 권포근씨. 조현 기자

이 부부도 불편당살이가 처음부터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었다. 비록 전세이긴 했지만 치악산 아래 2층 양옥집에서 요가를 하며 자족했던 권씨는 아궁이에 장작불 지피며 살고 싶다는 철없는 남편의 청을 ‘한 달 묵언’으로 거부했다. 그러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란 마음으로 이사를 와서도 아궁이에서 불장난이나 하는 남편을 보고 있노라면 잡초투성이 마당을 보는 것만큼이나 심란했다. 그런데 그 잡초들을 낫으로 싹둑싹둑 베어내는 날은 에너지가 다 빠져나간 듯 기동을 할 수 없이 몸이 축축 늘어졌다. 오랫동안 요가를 해서 몸의 감각이 예민한 권씨에게 잡초들의 ‘살려달라’는 아우성이 전이된 것만 같았다. 목회도, 식당도 접고 벌이도 없는 상황에서 권씨는 어느 날 대형마트에 가서 천정부지로 오른 배추를 살 엄두를 내지 못하고 돌아와 잡초밭을 넋 놓고 바라보다 놀라운 발견을 했다. ‘아, 저것들도 먹는 거였지’란 생각이 든 순간 개망초와 질경이를 뜯어다 비빔밥을 해줬더니, 고 시인은 게 눈 감추듯 맛있게 먹었다.

“마당에 보석을 두고도 몰라봤다. 앞마당과 뒤란의 잡초들을 세어보니, 먹을 수 있는 것만 80종이나 됐다. 더구나 마트에서 파는 것과는 달리 제초제도 안 친 무공해에 약성도 강한 야생 토종들이다. 이토록 흔한 것이 귀한 것인 줄 알았으니,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철이 든 셈이다.”

15년 전 원주 시골 한옥 이사 뒤
개망초 질경이 등 마당 잡초로
반찬과 샐러드 만들어 밥상 차려
“마당과 뒤란에 식용잡초만 80가지
무공해에 약성도 강한 토종이죠”

아내 권포근씨는 야생초 요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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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마음> 표지.

고 시인은 그때부터 야생초 전도사가 됐다. 잡초비빔밥에 잡초비빔라면까지, 밥상엔 잡초가 빠지지 않았다. 그랬더니 쭈글쭈글하게 노화증상이 완연하던 귀가 새싹처럼 펴지고, 누렇던 오줌이 맑아지고, 쌕쌕거리던 숨소리도 평안해지고, 조금만 걸어도 지쳤던 몸은 이제 한 번에 만보 정도 걸어서는 성이 차지 않을 정도가 됐다. 생인손을 앓던 부인의 손발톱 염증도 가라앉았다. 늘 체한 것 같다던 딸은 토끼풀 샐러드를 먹고는 오래도록 묵은 체증이 내려갔다.

가족의 몸으로 야생초 효험을 절감한 고 시인은 본격적으로 식물도감과 동의보감을 뒤지며 공부했다. 그리고 “풀이 웬수”라며 풀과의 전쟁을 벌이는 이웃 농부들에게 고질병을 고치는 ‘잡초 비방’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부인도 더욱 신이 나서 돌미나리와 민들레로 김치를 담그고, 토끼풀로 튀김을 만들고, 폐에 좋은 곰보배추로 막걸리를 담그고, 삼계탕에도 비단풀을 넣어 끓였다.

“씨 뿌리지도 않고, 수고하지 않고도 자연이 저절로 주는 것이어서 시골 사람들조차 잡초 귀한지 잘 모르는 수가 많지만, 실은 집 주위 야생초 스무가지만 알면 못 고칠 병이 없다고 한다.”

개망초 떡국떡을 썰고 있는 야생초 요리가 권포근씨. 조현 기자
개망초 떡국떡을 썰고 있는 야생초 요리가 권포근씨. 조현 기자

고 시인은 약초학자 최진규 박사가 항암치료제로 주목받는 풀을 찾아 아마존까지 가서 대량으로 뜯어말려 어렵사리 가져와 자기 집 마당에 들어서니 똑같이 생긴 풀이 마당에 가득했다는 일화를 전하며 ‘흔한 것이 귀한 것이다’라는 불편당의 격언을 다시금 강조했다.

그는 “가뭄으로 농작물들이 노랗게 타들어 가도 논두렁 밭두렁에서 푸른빛을 뽐내며 쑥쑥 자라는 게 잡초”라며 야생의 약효를 소개했다. 비름은 심혈관에 좋고, 우슬초는 관절염에 좋고, 환삼덩굴은 고혈압에 그만이고, 질경이는 눈을 밝게 하고, 엉겅퀴는 간경화와 황달에 좋고, 왕고들빼기는 인후염과 편도선에 좋고, 쇠별꽃은 자궁병과 심장병에 좋고, 소루쟁이는 변비와 소화불량에 좋고, 벼룩나물은 해열과 해독을 돕는다는 것이다.

“타자의 아픔을 치료한다는 점에서 잡초야말로 그리스도와 가장 닮았다. 잡초는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는다. 시련을 견뎌낼 뿐 아니라 그걸 오히려 이용한다. 질경이는 길에서 발에 밟히고 바퀴에 짓이겨질 때 젤리 같은 게 나와 달라붙어서 더 멀리 씨를 퍼트린다. 그러니 잡초야말로 우리 삶의 스승이 아닐 수 없다.”

고 시인은 “그 무엇보다 야생의 날개를 접지 않고, 좀 더 불편하게 살며 야생에서 먹거리를 채취해 먹게 되면 월 백만원으로도 시골살이를 할 수 있어 미래의 두려움이 사라진다”면서 자연의 미소를 지었다.

원주/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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