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한양특허법인 김연수 대표변리사
깨달음과 영적인 삶을 추구하려면 세속적인 삶을 포기하라는 가르침이 지배적이다. 세속적인 성취와 영적인 추구는 채움과 비움만큼이나 동떨어져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쫓을 수 없다고 여겨서다. 그러나 수도와 세속 삶을 마치 한마리 토끼처럼 쫓은 이가 있다. 한양특허법인 김연수(66) 대표변리사다. 명상 관련 책만 10권을 낸 명상가이기도 한 그는 이번에 자신의 마음공부를 총정리한 <정견>(터득골 펴냄)을 냈다. 그를 3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한양특허법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100여명 직원이 일하는 한양특허법인은 삼성전자 휴대전화 디자인 부문과 현대자동차 특허기술 및 자동차 디자인 부문 일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한 특허법인이다. 애플이 삼성전자를 디자인 침해로 제소했을 때 삼성전자 디자인팀과 밤을 새워 애플 쪽 디자인 권리를 무효화하거나 축소할 만한 자료를 찾아내 미국 법원 재판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됐다. 글로벌 기업들의 지적재산권 업무를 대리해 치열한 머리싸움을 벌이는 이 조직을 이끄는 김 대표가 정작 일생을 걸고 한판 씨름을 벌였던 것은 지적 다툼이 아니라 내적 갈등이었다.
그는 초등 3학년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 집안이 파산하면서 추운 겨울 집에서 쫓겨나는 처지가 됐다. 여름옷을 입고 도시락도 없이 학교에 가야 했던 고통에 죽고 싶어 한강다리까지 갔던 불운한 소년이었다. 과외 교사, 신문팔이, 장사 등 소년 가장으로 안해본 일이 없던 그는 미술 실습과외 한번 못받았지만 고교 미술 교사의 권유로 서울대 미대에 진학했다. 삶의 고통만큼이나 내적인 상처와 아픔을 감내하며 살았던 그가 한줄기 빛을 본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함께 교회에 다니던 친구와 서울 정릉에 갔다가 삼정사란 절에서 친구가 스님에게 전도를 하려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리보다 네댓살 연상이던 스님은 버릇없는 전도자의 도전에도 화를 내긴커녕 너무도 친절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때 ‘아, 참 아름다운 사람이다’란 느낌이 들었다. 그 뒤 여러차례 그분을 찾아갔고, 내가 그동안 너무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다는 것을 느꼈다.”
그 스님을 통해 고통을 해소하는 답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는 것을 직감하면서 그는 도반들과 함께 백봉 김기추 거사, 탄허 스님, 구산 스님, 서옹 스님, 성철 스님, 송담 스님, 청화 스님, 숭산 스님, 대행 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삼정사에서 만난 스님의 은사였던 서옹 스님(전 조계종 종정)을 은사로 출가해 전남 해남 대흥사 동국선원에서 행자를 하고, 서옹 스님을 시봉했다. 그는 2년의 출가생활 끝에 환속해 속세로 돌아왔다. 이어 출판사에 다니다 공부를 해 변리사 시험에 수석 합격했다. 로펌 ‘김앤장’에서 근무하다가 개업한 한양특허법인을 업계 상위 1%로 키워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세속적 성취를 이뤄냈지만, 그의 내면은 늘 영적인 빛을 갈구하고 있었다.
출가 2년 뒤 환속해 변리사 시험
직원 100명 ‘상위 1% 법인’ 일궈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 주요 고객
최근작 ‘정견’ 등 명상 책 10권 써 2008년 ‘피올라 마음학교’ 만들어
“나를 바로 보는 게 중요하죠” “대학 때 송담 스님(인천 용화선원 선원장)을 뵙고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입니까’ 물었을 때 그분은 침묵으로 답했다. 오히려 하고많은 말보다 그 말 없는 침묵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출가 시절 대흥사에 있을 때 어두운 밤 뒷산 암자로 향하는 길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처음엔 호랑이불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잠시 뒤 묵언정진하던 청화 스님(전 곡성 성륜사 조실)이 내려오고 있었다. ‘아, 사람도 수도를 하면 이렇게 빛이 나는구나.’ 그 큰스님들에 대한 체험이 십계명의 돌판처럼 가슴에 새겨져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한양특허법인이 자리를 잡은 20여년 전부터는 틈나는 대로 짬을 내 영적 수행에 매진했다. 기공과 위파사나, 화두참선 등을 하며 애쓰던 2002년 그는 분별이 무너지는 체험을 했고, 2006년 더 확고한 체험을 했단다. 그는 이를 ‘깨어남’이라고 했다. 이어 2008년 피올라마음학교를 설립했다. 어린 시절 상처와 좌절의 족쇄에서 깨어나 자유로워진 자신의 깨어남 체험을 나누는 교육장이다.
“허망한 그림자에 불과했던 생각과 감정에 의지해 세상을 고해라 여기며 온갖 걱정과 두려움 속에서 노심초사해온 그때까지의 삶은 긴 악몽이었다. 그 악몽에서 깨어나면서 내가 지금까지 마음이 만든 상념세계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분명히 보면 상처라는 것도 내가 만든 착각이고 환영일 뿐이다.”
그가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는 깨어남의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정견(正見)이다. 생각이나 감정, 느낌을 더 이상 자기와 동일시하지 않고 아무 분별 없이 그냥 봄으로써 생각·감정·느낌에 휘둘리거나 끌려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명상이 마음의 찌꺼기를 비워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새 아이디어에 대한 창조력을 높여줄 수 있다며 현대인들에게 적극 명상을 권한다. 실제 명상의 제1 수혜자는 자신이었다. 또 그가 심혈을 기울이는 게 스트레스 해소다. 직장인들이 고통받는 원인의 대부분이 일이 아니라 인간관계임을 알아서다. 따라서 그는 특허법인 종사자들 중 희망자에게 자주 명상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때마다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다. ‘어떻게’엔 해법이 없다. 왜 그 사람만 보면 짜증이 나고, 그 일만 맞닥뜨리면 힘들어지는지, 어쩔 줄 몰라하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에만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자신을 진단하고 나를 바로 봐야 한다. 내 자신을 바꾸면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명상가인 김연수 한양특허법인 대표변리사. 조현 기자
직원 100명 ‘상위 1% 법인’ 일궈
삼성전자 등 대기업들 주요 고객
최근작 ‘정견’ 등 명상 책 10권 써 2008년 ‘피올라 마음학교’ 만들어
“나를 바로 보는 게 중요하죠” “대학 때 송담 스님(인천 용화선원 선원장)을 뵙고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입니까’ 물었을 때 그분은 침묵으로 답했다. 오히려 하고많은 말보다 그 말 없는 침묵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출가 시절 대흥사에 있을 때 어두운 밤 뒷산 암자로 향하는 길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처음엔 호랑이불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잠시 뒤 묵언정진하던 청화 스님(전 곡성 성륜사 조실)이 내려오고 있었다. ‘아, 사람도 수도를 하면 이렇게 빛이 나는구나.’ 그 큰스님들에 대한 체험이 십계명의 돌판처럼 가슴에 새겨져 지워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한양특허법인이 자리를 잡은 20여년 전부터는 틈나는 대로 짬을 내 영적 수행에 매진했다. 기공과 위파사나, 화두참선 등을 하며 애쓰던 2002년 그는 분별이 무너지는 체험을 했고, 2006년 더 확고한 체험을 했단다. 그는 이를 ‘깨어남’이라고 했다. 이어 2008년 피올라마음학교를 설립했다. 어린 시절 상처와 좌절의 족쇄에서 깨어나 자유로워진 자신의 깨어남 체험을 나누는 교육장이다.
김연수 한양특허법인 대표변리사.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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