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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어르신들 찾아 산골로 교회 옮기니 마을이 살아났죠”

등록 2022-06-14 18:58수정 2022-06-15 02:50

[청주 쌍샘자연교회 백영기 목사]
30년 전 청주 달동네서 교회 열어
10년 뒤 재개발에 ‘전하울 산골행’
교인들도 옮겨와 9가구서 60가구로
카페·공방·도서관까지 생겨 활기
청주 쌍샘자연교회 백영기 목사. 조현 기자
청주 쌍샘자연교회 백영기 목사. 조현 기자

시골 마을에선 폐가가 늘고, 노인들 말고 아이들과 청년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게 다반사다. 그러나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호정리 전하울마을은 다르다. 옛 청원군으로, 청주 도심에서 차로 한적한 산길을 30분가량 달려야 나오는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던 이곳도 20년 전까지 폐가가 즐비했다. 남은 9가구에도 노인들만 살았지만, 지금은 60여가구로 늘어 활기가 넘치는 마을이 됐다. 그 중심에 쌍샘자연교회가 있다. 지난 12일 마치 카페나 게스트하우스 같은 느낌의 쌍샘자연교회를 찾아 담임 백영기(61) 목사를 만났다.

쌍샘자연학교에 참석한 아이들.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쌍샘자연학교에 참석한 아이들.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쌍샘자연교회가 20년 전 청주 도심에서 이곳으로 이전해온 이후 교우들이 한집 두집 내려왔다. 그런 집이 18가구다. 이들이 젊은 감각으로 멋들어진 집을 짓자 외지인들까지 너도나도 이 마을에 몰려들었다. 원주민들도 자극을 받아 집을 멋지게 개조하거나 새로 지으면서 전하울은 산과 들과 전원주택이 어우러진 한폭의 그림이 되었다.

쌍샘자연교회가 들어올 때만 해도 마을 어르신들의 반대가 심했다. 노인들밖에 없는 산골로 들어오는 교회는 사이비나 기도원일 것이라는 것이었다. 백 목사는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 ‘마을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겠다. 마을 사람들이 원치 않으면 떠나겠다’라는 두가지 약조가 담긴 각서를 쓰고 들어왔다.

쌍샘자연학교에서 모내기를 하는 쌍샘자연교회 교인들과 아이들.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쌍샘자연학교에서 모내기를 하는 쌍샘자연교회 교인들과 아이들.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쌍샘자연학교.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쌍샘자연학교.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쌍샘자연교회는 교인 100명 남짓한 조그만 교회다. 그런데 교인들이 자율적으로 카페와 공방, 갤러리를 운영하고, 도서관과 출판사까지 꾸려간다. 매월 마지막 일요일엔 주일예배를 마치고 전 교인이 마을 청소에 나선다. 지금처럼 마을과 교회가 공생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없었을 리 없다. 마을에 정착한 교우들이 주말에 늦잠을 자려는데 마을 이장이 스피커로 방송을 하면 항의를 하기도 했고, 청주 시내로 출근하려 나선 차 앞에 경운기가 지나고 있으면 경적을 울려서 어르신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백 목사는 어르신을 찾아가 “요새 젊은 사람들이 뭘 몰라서 그러니 용서해달라”고 빌고, 돌아서서는 교우들을 달래곤 했다.

소모임에서 토론을 펼치는 쌍샘자연교회 교인들.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소모임에서 토론을 펼치는 쌍샘자연교회 교인들.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녹색운동을 벌이는 쌈생자연교회 교인들.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녹색운동을 벌이는 쌈생자연교회 교인들.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쌍샘자연교회는 다음 달로 창립 30돌을 맞는다. ‘쌍샘’은 처음 청주 모충동 달동네에서 시작했다. 백 목사는 가난한 동네 아이들에겐 당시만 해도 그림의 떡이던 그림책과 동화책을 얻어다가 비치해놓고 간식을 먹이며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달동네 교회는 초기 청년 2명, 학생 3명이 교인의 전부여서 목사 사례비조차 없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부인의 월급까지 털어 넣어도 생활과 공부방 운영을 해나가기 어려워 백 목사는 인근 유치원의 승합차를 운전해야 했다. 그런데 10년 만에 달동네가 재개발됐다. 재개발되면 교회도 아파트촌에 어엿하게 자리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아파트가 들어서면 가난한 사람들이 쫓겨나니 자신이 돌볼 사람이 없다고 여긴 백 목사는 노인들만 남은 시골 마을로 눈길을 돌렸다. 20명 남짓한 교인들은 누가 그 시골까지 따라가겠느냐고 말렸지만, 순박한 그를 믿어준 전국 각지의 100명이 100만원씩을 보태주어 그의 전원행을 도왔다.

청주 쌍샘자연교회 백영기 목사. 조현 기자
청주 쌍샘자연교회 백영기 목사. 조현 기자

아픈 사람들과 교회 손님들이 쉴수 있도록 흙집을 직접 만들고 있는 쌍샘자연교회 교인들.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아픈 사람들과 교회 손님들이 쉴수 있도록 흙집을 직접 만들고 있는 쌍샘자연교회 교인들.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백 목사는 10대 때 너무나 가난해 학교도 가지 못하고 일을 해야 했던 소년 노동자 출신이다. 스무살이 되어서야 겨우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볼 수 있었을 만큼, 기본 공부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여건이었다. 가난한 이들이 어린 시절 한을 덮으려고 성공을 향해 달려갈 때, 그는 오히려 자신처럼 책도 살 수 없고, 공부도 마음 편히 할 수 없는 아이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향한 시선을 거둔 적이 없었다.

그가 산골에 내려와서도 가장 많이 한 게 아이들의 자연학교 운영이다. 매주 토요일은 기본이고, 가끔 1박2일, 2박3일 캠프를 열어 아이들이 직접 옥수수를 심고 감자와 고구마를 캐게 했다. 그 과정에서 어른들이 더 많이 배우고 기뻐했다.

쌍샘자연학교.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쌍샘자연학교.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인문학사랑방모임에 참여중인 쌍샘자연교회 교인들.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인문학사랑방모임에 참여중인 쌍샘자연교회 교인들.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쌍샘자연교회는 올해를 ‘그린 엑소더스의 해’로 정해 욕망의 과소비에서 벗어나 녹색 삶을 실천하기로 했다. 전 교인이 녹색삶에 나선 데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자연학교 캠프를 통해 흙과 물을 만지고 채소를 가꾸며 우리가 생태의 일부임을 깊게 체득했기 때문이다. 매년 연말이면 ‘새해엔 옷을 사지 않겠다’거나 ‘남 욕을 하지 않겠다’고 한 다짐을 실천해가는 데서 녹색삶이 구호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백 목사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이사이자 개신교에서 가장 큰 교단인 예수교장로회통합의 녹색교회협의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교인들도 매달 사랑방 인문학에서 함께 책을 읽고 의견을 나누고, 마을생태도서관 봄눈에서 사회적 감수성을 키운다. 30돌을 맞은 올해는 매달 외부 강사를 초청해 예배시간에 목사 설교 대신 인문학 강연을 경청한다. 성경책만이 아니라 인문학책을 탐독하며 카페와 도서관에서 어울려 독서 토론을 벌인다. 기도 시간엔 자신의 욕구를 이뤄달라는 게 아니라 자기보다 더 가난하고 아프고 힘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보고, 외부에서 온 이들은 이상하다는 듯한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교인들과 마치 친구처럼 지내며, 끼니를 거른 교인들에게 직접 밥을 퍼주는 백 목사의 모습도 외지인에겐 낯설지만, ‘쌍샘’에선 특별할 게 없다.

교회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쌍샘자연교회 교인들.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교회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쌍샘자연교회 교인들.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교회 마등에서 마을장터를 펼친 쌍샘교회 교인들.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교회 마등에서 마을장터를 펼친 쌍샘교회 교인들. 사진 쌍샘자연교회 제공

백 목사는 “예수님은 우리를 깨트리고 무너지게 하고 두 손 들게 해서 우리를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러워지게 하는 분”이라며 겸손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삶도 탐욕으로 억지로 변화시키고 채우려 하기보다는 순리를 따르며 자연스러워져야 하겠지요. 영성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삶을 건강하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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