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우리’가 익숙했었던 우리. 그러나 어느새 ‘우리’보다 ‘나’를 앞세운 시대입니다. 경쟁과 적자생존 속에서 빈부격차, 정치 이념 갈등과 남녀노소로 갈리며 개인과 개인의 소통도 막혀갑니다. 그래서 함께하는 삶이 더욱 그립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함께하면 견딜 수 있습니다.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함께하니 더 기쁜 삶-일상 고수에게 듣다’를 10차례에 걸쳐 진행해 더불어 사는 삶이 주는 맛을 나눕니다. 여덟번째는 전북 익산 금마면 구룡마을 좌산 이광정 상사(86)입니다.
멀리서 보면 산처럼 엄중하지만, 가까이 마주하면 구들장처럼 따뜻하다. 온화하지만 결코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하지 않는다. 한번 입을 열면 명확하기 그지없다. 도담은 물론 정치와 통일론까지 생각이 등대처럼 선명하다.
논어에서 자하는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 말을 할 때 등 달라지는 군자의 모습을 설했는데,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산 아래에 구룡마을에 가면 그런 모습을 직접 마주할 수 있다. 원불교 최고 어른인 좌산 이광정 상사다. 상사는 원불교 최고지도자인 종법사를 지낸 분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좌산 상사는 1994~2006년 종법사로 신생 교단인 원불교를 반석에 올리는 데 기여했다.
지난달 23일 봄바람을 맞듯 화기롭게 맞이해준 좌산 상사와 함께 상사원이 있는 구룡마을을 산책했다. 미륵산 아래 전형적인 시골마을인데도 대나무밭 주위로 멋진 집들에서 주민들이 고개를 내밀고 좌산 상사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마당 잡초를 뽑다가 인사를 건네는 젊은 여인도, 멀리서 화답하는 좌산 상사도 정답다.
그들 주위로 펼쳐진 마을엔 흩날리는 쓰레기 하나 없이 정갈하고 산뜻하다. 그러나 애초부터 이 마을이 이렇게 깨끗했던 것은 아니다. 한강 이남 최대 대나무 군락지인 5만㎡의 대나무밭은 드라마 <추노>와 영화 <최종병기 활> 등의 촬영지로도 유명해 적지 않은 관광객들이 찾았다. 그 관광객과 미륵산 등산객들이 차 밖으로 버리는 쓰레기로 한때 몸살을 앓기도 했다. 좌산 상사는 2006년 이 마을에 오자마자 늘 부대를 들고 이 마을 곳곳과 미륵산을 오르내리며 쓰레기를 주었다. 마을이 깨끗해지자 관광객들도 쉽게 쓰레기를 던지지 않았고, 새로 이 마을에 정착한 귀촌인들도 앞다투어 화초를 심고 정원을 가꾸며 집 주변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옛 조상들이 현실의 불국토를 열망해 이름 지은 미륵산과 용화산이 둘러싼 구룡마을에서 변한 건 겉모습만이 아니다. 좌산 상사도 이 마을 토박이가 아니라 귀촌인인 셈이지만, 누가 박힌 돌이고 굴러온 돌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둥글둥글하다. 상추농사를 짓는 어느 토박이 주민은 상사원에서 먹는 상추를 아예 대다시피 한다. 주민들은 며칠이 머지않아 수확한 다른 농작물을 들고 앞다투어 상사원을 찾는다. 좌산 상사도 전국에서 제자들이 보내오는 먹거리를 이웃이나 마을 경로당과 나누고 있다.
이웃지간엔 종교 간 벽도 넘는다. 좌산 상사가 미륵산에 오를 때면 산 중턱에 있는 사자암의 향봉 스님에게 들러 ‘차 한 잔’을 청하고, 향봉 스님도 멀리 좌산 상사가 보이면 꼭 차에서 내려 달려와 인사를 드린다. 어디에 가도 다 한가닥씩 하는 종교인들이지만 이 마을에선 스스럼없는 이웃일 뿐이다. 선화공주와 국경을 넘어 사랑을 나눈 서동왕자 무왕이 머문 왕궁터가 있는 고장답게, 여러 용들이 다투지 않고 어울리는 게 미륵 세상이고 용화 세상이 아닐까.
산에 올라가 수도하고 기도만 한다고 이상향이 도래하는 것은 아닐 터다. 좌산 상사는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대각(큰 깨달음) 후 행동이 이를 말해준다”며 교단의 초기 모습을 들려주었다.
“대종사께서 대각하신 직후 대각의 심경을 글로 읊고 말씀한 것을 제자들이 수합해 <법위대전>이란 책이 나왔다. 신비한 이야기도 많아 수도자들이 매력을 느껴 한 번 보면 이 책을 놓을 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대종사께서 이 책을 남김없이 가져오게 한 뒤 모두 불태워버렸다. 한 제자가 몰래 보기 위해 감춰둔 것까지 가져오게 해 소각했다. 대종사께서 대각하고 보니, 대각의 기쁨도 잠시, 우리나라 동포들은 나라를 빼앗겨 지옥 속에 있고, 유럽국가들도 세계대전으로 수천만이 죽고 죽이는 살육전이 전개되는 이 세상을 이대로 뒀다가는 장차 구할 수도 없는 지경에 빠질 것으로 보고, 그런 신비서들은 없애고 정전(원불교 교전)을 정리해 사실적인 진리로 구제창생의 길을 열었다.”
좌산 상사가 전하는 정전의 핵심은 일원상 진리와 ‘사은사요(四恩四要) 삼학팔조(三學八條)’다. 원불교인들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들이다. 좌산 상사는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구세창생을 위한 혁명적인 진리는 ‘원망을 은혜로 돌리는 것’이라며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죄로 봤다. 그래서 죄에서 구원한다는 것이었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고(통)로 봤다. 고에서 해방되도록 해탈 길을 제시했다. 대종사님은 이 세상을 죄나 고가 아니라 은혜로 봤다. 천지와 부모와 모두의 은혜를 입고 살았으니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매사 원망을 감사의 자세로 바꾸지 않으면 서로 원망하고 죽고 죽이는 폭력을 끝낼 수가 없기에 해법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인성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까지 알려준 것이다.”
대종사의 후예답게 그는 도(道)와 국가·사회를 둘로 보지 않는다. 그는 <국가 경영 지혜>란 책을 통해 국가의 지도자들이 유의할 점, 법을 적용할 때 마음가짐 등을 상세히 제시했다. ‘합리주의와 국가경영’이란 제목의 글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제 논에 물 대기식 경영’을 예리하게 질타한다. 어떤 현실이나 방안에 대해 강한 집착을 하면 맹신맹종 하게 되고 합리적 지혜는 마비되어 결국 합리적 방안도 거부하게 되어 국정운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현실적 상황 추이에 따라 때로는 보수적 관점으로, 때로는 진보적 관점으로 해결해야지 합리성의 검증도 없이 판단부터 내리는 억지 주장보다는 합리 경쟁을 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게 그의 당부다. 자기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으로 자기편은 뭐든 옳다고만 하는 비합리적 편당 정치는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그는 “정치만 합리적으로 하면, 우리 국민은 영특하니 가만히 둬도 각 분야가 세계 최고가 된다”고 말한다. 이제는 딴 세상 이야기처럼 되어버린 남북한 화해와 통일에 대해서도 그는 곡진한 소원을 잊지 앉는다.
“통일하면 북한사람들 먹여 살리느라 남한만 힘들어진다고 하는데, 남북이 대치하고 전쟁위기 때문에 우리가 매년 매월 매일 총기, 미사일, 전차, 전투기, 전투함, 군 인건비와 운영비 등으로 부담해야 하는 분단비용은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세금 안 들이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앞으로도 분단 때문에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는 미래와 남북이 화해하고 통일돼 우리가 유럽까지 차를 몰고 가고 수많은 물자를 수출할 수 있는 것과 어느 쪽이 더 희망적인가.”
이토록 화해와 통일의 방법을 간절히 바라는 그답게 동서고금에서 우리가 나침반으로 삼아야 할 인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를 꼽았다.
구룡마을의 길고양이가 상사원으로 들어와 산다. 좌산 상사가 나오면 쓰다듬어달라며 다가온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흑인들이 살던 남아공은 금을 비롯한 자원들이 많아 영국이 개발해 이권을 뺏어가며 흑인들을 핍박해 극심한 흑백갈등을 빚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비난도 커져 영국도 비상식적인 일을 계속할 수 없어 고민하다가 27년째 옥살이를 하면서도 ‘흑인과 백인이 평등하게 어울려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 만델라를 석방시켰고, 만델라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오랫동안 소외된 흑인들은 나라를 경영할 능력이 부족했기에 만델라는 백인 장관 아래 흑인 차관을 두고 배우게 하며 흑백갈등을 종식시켰다. 이승만은 3선 개헌을 해 정권을 연장하려고 했지만 만델라는 약속한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그는 “인종이 다른 흑백 간에도 갈등을 종식하는데, 남북은 한민족인데도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고 방기하는 것은 역사적 죄악을 짓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종교인이면서도 늘 합리성을 중시한다. 따라서 경쟁을 없애자거나 숫자적 평등만을 강조하지도 않는다. 회사나 국가를 경영하는 데는 그 분야의 인재가 당연히 중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 낙방이나 낙오로 사회적 경쟁에 뒤처지거나 ‘왕따’ 등의 상처를 비롯한 다양한 이유로 집에서 아예 나오지 않는 은둔 청년 60만여명을 위한 그의 조언은 무엇일까.
“민주주의 사회는 선의의 경쟁 문화는 있어야 한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좋은 것을 서로서로 더 잘하려고 할 필요가 있다. 어느 경쟁에서도 뒤처진 사람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들이 정상적인 사람들과 달리기를 해서 이기긴 어렵다. 따라서 경쟁에 뒤처진 사람들을 배려하는 원숙함이 좋은 사회의 조건이다. 뒤처진 사람들을 방치하고 내팽개치면 결국은 사회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이 인과법이다.”
그는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고도로 발전해가는 한국을 잘 이끌어가면서도, 우리 사회가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들도 기회를 주며 배려하는 일등국으로 만들자”며 간절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익산/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