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우리’가 익숙했었던 우리. 그러나 어느새 ‘우리’보다 ‘나’를 앞세운 시대입니다. 경쟁과 적자생존 속에서 빈부격차, 정치 이념 갈등과 남녀노소로 갈리며 개인과 개인의 소통도 막혀갑니다. 그래서 함께하는 삶이 더욱 그립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함께하면 견딜 수 있습니다. 한겨레와 플라톤아카데미가 ‘함께하니 더 기쁜 삶-일상 고수에게 듣다’를 진행하며 국내편에 이어 미국에서 6명의 고수들을 만났습니다. 미국편 네번째는 원불교 죽산 황도국 미주종법사(73)입니다.
미국 뉴욕주 클레버렉 52만평에 들어서 있는 원다르마센터 전경. 조현 기자
지난달 15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차로 2시반 정도 걸리는 뉴욕주 클레버렉의 원다르마센터를 찾았다. 원다르마센터엔 원불교 미주 총부가 있다. 한국 전북 익산의 원불교 중앙총부와 별도로 원불교에서 처음으로 지난 2021년 설립한 해외총부다. 미주총부는 미국과 캐나다 남미의 28개 교당과 필라델피아 선학대학원 등 15개 기관을 관할한다. 이곳엔 수장인 죽산 황도국 종법사와 함께 15명 안팍의 인원이 상근하며, 법회와 각종 훈련을 이끌고 있다.
옛 인디언들이 살던 터 52만여평의 부지와 원다르마센터 건물은 독실한 원불교 고도였던 김혜성 종사(1924~2013)의 자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등이 희사해 2011년 들어섰다. 가끔씩 사슴이 내려와 뛰어놀고, 밤이면 코요테 소리가 들리는 원다르마마센터의 게스트하우스는 ‘타임리스’(무시·無時)동, ‘플레이스리스’(無處)동 등으로 이뤄져 있다. 명상시간에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고, 수도원이나 사찰에 있을 때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일상적 삶 전체를 수행으로 삼는다는 원불교의 생활불교 정신이 담겨있다.
새벽 4시30분 교무들이 하나둘씩 법당으로 모여들어 죽산 종법사와 함께 참선을 했다. 약 한시간가량 참선으로 마음을 고요하게 한 다음 반야심경과 일상수행요법을 암송하는데, 하나같이 영어로 진행된다. 미국에선 미국인들의 언어와 미국인들의 방식으로 마음공부를 전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죽산 미주종법사는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에서 일고 있는 명상바람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고 역설했다.
원다르마센터 법당에서 매일 새벽4시30분 진행되는 명상시간. 조현 기자
“미국이 선진국이지만, 총기사건으로 1년에만 5만여명이 죽는다. 마약으로도 1년에 10만명 이상이 죽는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전쟁이 있지만 1년에 15만명이 죽는 전쟁은 없다. 미국에서는 소리 없는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명상 바람이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니다. 이들은 그래도 개척정신과 실용주의 정신이 있다. 그 정신에 따라 돌파구를 찾으면서 내부에서부터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인지가 열릴수록 더욱 거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는 “기독교 문화로 이뤄진 미국에 막상 와보니 미국인들이 3박4일씩 명상프로그램에 참석해 묵언을 하면서 선(禪)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과학문명이 발전할수록 정신적으로는 혼란이 가중되고, 실리콘밸리 등 아이티산업이 흥한 곳일수록 더 명상 바람이 거센 것에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던 소태산 대종사(원불교 창시자)의 말씀이 실현되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적 같은 걸 이야기하는 것을 질색하고, 종교가 너무 편향된 것에 염증을 내는 미국인들의 실용주의적 노선과 원불교의 생활불교가 잘 맞아떨어진다”고 보았다. 이미 원다르마센터에서도 일요일 법회 때는 인근 현지인 50~60명가량이 찾아오고, 노스캐놀라이나 법당 법회엔 주로 미국인 70~80여명이 모여 법회를 보고, 나사의 고위직이 원불교 마음공부에 심취해 법회에 참석하는데서 이미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엔 브라이언과 캐시 두명의 미국인 원무(재가자이면서 교무의 역할을 하는 직책)가 탄생했다. 죽산 미주종법사는 원다르마센터의 넓은 대지에 미국 현지인들이 와서 함께 일상의 삶과 수행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되는 공동체를 꾸려갈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미국인들이) 처음엔 쇼핑하듯 이곳저곳에서 명상을 해보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점차 깊이있는 마음공부 쪽으로 관심 폭이 깊어질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처음엔 명상이 건강에도 좋다는 식으로 접근하지만, 모든 건강과 불건강의 원인은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가며 마음공부를 하는 시대로 접어들것이라게 그의 예측이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용심법(마음을 사용하는 법·用心法)을 전했다. ’세상의 모든 난리는 마음 난리로부터 시작되니, 마음을 다스리면 몸과 마음과 세상의 난리도 다 치유가 된다’는 것이다. 모든 병의 근원을 쫓아가면 만병이 마음으로부터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이 부대껴 갈등이 일어나고, 괴로운데도 마음을 어떻게 할지 몰라 힘들어한다. 마음을 잘 쓰고, 잘 관리하는 것이 근본적인 치유의 길이다.”
일문일답이다.
죽산 황도국 원불교 미주종법사. 사진 조현 기자
-한국과 미국 종교 무엇이 다른가.
“한국은 무종교인이 늘지만 미국도 마찬가지다. 젊은이들은 거의 종교에 관심이 없다. ‘옛날식 종교’(선천종교)에 대해 거부감이 강하다. 특히 종교가 편향된 의심을 심어주는 것이나 진리와 사실에 맞지 않은 교리에 대해 염증을 낸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 종교든 자기 종교의 틀이 아주 강한데, 이곳에선 종교 간 경계가 별로 없다. 원불교 교당에도 유대인이나 가톨릭 신자들도 온다.
-미국에서 동양 종교와 수행에 대한 변화는.
“1850년대엔 중국불교가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 1900년대 초엔 스즈키다이세츠가 학적으로 전파했다. 1950년대엔 ‘선심초심’의 저자인 선사 스즈키 순류가 선(禪)을 전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잡스가 스승으로 모신 분이다. 이어 틱낫한, 달라이라마 등의 책들이 많이 나오면서 진리를 인식하는 차원이 달라졌다. 종교가 사람을 구속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해탈과 자유를 준다는 점에서 서양인들이 환호했다. 지금은 쇼핑하듯 이곳저곳의 동양 수행을 다니지만, 점차 더 깊이 들어갈 것이다.”
죽산 황도국 원불교 미주종법사 등이 원다르마센터 법당에서 새벽에 참선 명상을 하고 있다. 조현 기자
-불교 계통 가운데도 미국에서 달라이라마나 린포체들의 교화와 체계적인 티베트 불교의 가르침으로 티베트불교에 심취한 사람들이 많고, 우리가 소승불교라고 부르는 상좌부 불교, 테라바다의 위파사나식 마음챙김, 마인드풀니스가 미국에서 널리 수행되고, 일부는 일본 선불교와 한국의 숭산스님 등의 영향을 받아 선수행을 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기존 불교 수행들과 원불교의 접근법은 어떻게 다른가.
“원불교는 생활과 접근해서, 구체적으로 수행을 지도한다. 구체적으로 일기까지 쓰게 한다. 대종사께서는 매일 수입과 지출까지 대조해 쓰게 했다. 즉 다른 사람에게 이타를 얼마나 하고, 얼마나 도움을 받았는지까지 기재하게 했다. 또 정(靜·좌선처럼 움직임 없이 수행)과 동(動·생활 속에서 수행) 양쪽 고루 마음공부를 하게 한다. ‘옛날식 종교’는 정을 주로 했지만, 대종사께서는 오히려 동적인데 주체를 뒀다. 이곳에서 명상을 하는 미국인들도 처음엔 명상만 하지만 좀 더 깊게 들어오면 교법으로 구체적으로 들어와 삶을 체크해가면서 자기 삶이 변화되도록 한다.”
-원불교엔 소태산 대종사 말고도 공부를 이끌어준 이들이 많은데,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분은.
“대산종사(원불교 3대 종법사)님을 8년이나 모신 것이다. 대학교 졸업하고 4학년 졸업반에 처음 모시기 시작했다. 대상종사님은 삶을 100% 개방한 분이다. 잠잘 때까지 같이 잤다. 대산종사님을 통해 대종사님과 정산종사(원불교 2대 종법사)님이 어떤 어른인지, 세상 도수는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내 삶에서 가장 큰 복이었다.”
원다르마센터 경내를 함께 걷는 죽산 황도국 원불교 미주종법사와 조현 기자. 사진 원불교 미주총부 제공
-현대인에게 필요한 마음건강법은.
“마음의 원리는 세포와 같다. 우리 몸은 하루에도 수없는 세포가 죽고 새로 생겨난다. 1년이면 기존의 세포는 다 죽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왜 얼굴은 비슷할까. 세포는 바뀌는데 세포가 전생을 복제하기 때문일 것이다. 뒤 세포가 앞 세포를 복제하고, 그 순간에 먹는 마음이 세포 속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받는 순간 빨려들듯 들어가면서 세포의 돌연변이가 생긴다. 세포는 죽어야 정상인데 안죽는게 문제다. 그게 암이다. 암은 강한 스트레스에서 생긴다고 한다. 삶의 모든 부분이 마음으로부터 생겨난다. 삶의 근본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결국은 마음의 문제다. 그 부분을 어떻게 치유해야 하나. 스스로 치유하고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원불교 교리 안에는 그 치유 관리법이 담겨 있다.”
-미국에서 동양 정신문화의 역할은.
“국민의 의식이 깨어나지 않으면 정치도 변할 수 없다. 유튜브도 편향된 것들이 판을 친다. 시청자가 본 것과 같은 류의 것들만 자기 핸드폰에 뜨기 때문에 편향이 더욱 심해진다. 그러나 세상은 점차 열리고 진급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의식이 열려갈 것이다.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영화 ‘기생충’,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한류에 열광하는 미국인들이 너무도 많은데 놀라고 있다. 이제 한류는 세계적 기류로 한국 문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한국이나 미국이나 문화가 별반 다르지 않고, 함께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다. 한국의 위상이 한껏 드러나 한국의복, 한국 음식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한국 문화의 정수는 정신문화다. 앞으로 한류 정신문화가 뿌리 내려서, 미국의 도덕이 향상되어야 세상의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다. 거대한 사회의 윤리 흐름이 바뀌어 도덕적으로 향상되고, 대중들 의식은 점차 깨어나야 세상이 좋아질 것이다. 대종사께는 이제 정신이 문제라고 했다. 그 정신의 문제에 한류가 역활을 하게 되면, 세계적인 판도가 달라질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